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엄계옥 시인

인간이 지닌 가장 강한 그리움은 엄마다. 시인의 시는 슬픔이 극한으로 압축되어 우울한 잿빛이다. 더군다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죽음조차 무겁다. 인간은 어린 시절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 갓난아기 때는 해마가 발달하지 않아서 기억이 없다가 막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기억 창고가 만들어지고 동시에 기억이 저장된다. 그런 까닭에 유년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 먼 옛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물물교환 할 물건을 머리에 이고 산 넘고 재 넘어 시장에 간 엄마. 신새벽에 나가도 사십 리 길을 걸어 다녔으니, 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아들 딸이 얼마나 많았을까. 배춧잎 같은 엄마 발소리를 세느라 여린 귀는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귀가 되었을 터, 혼자 남겨진 무서움과 적막에 쌓여 훌쩍일 때 엄마 목소리가 신의 메아리처럼 들려온다면 반가움에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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