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하고 배우려는 골프처럼
논쟁하면서도 화합하는 화쟁
우리 정치에서는 불가능한가

▲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변리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도 최소한으로는 가족이라는 단체가 있고, 더 나아가면 학교를 통한 동문회, 취미를 통한 동호회 모임이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를 떠난 1차적 단체에서도 현재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하여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 가족 간에도 남편과 부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세대차이가 있어서 아이들과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서로간의 생각이 다름을 알면서도 지금의 우리는 그냥 내 생각을 내 머릿속에 박아 두고 그냥 벙어리처럼 지내기가 만만치 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모임에 가면 작금의 상황에 대하여 한 마디 꼭 하고 싶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모임에 가든 정치나 종교문제는 꺼내지 말라고 한다. 결국 서로 싸우게 되고 논쟁이 끝이 나지 않고 서로간의 관계가 꺼내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론에 이르기 때문에 이 말은 나름의 권위와 타당성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서로 다른 정치의견에 대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소통을 거부하고 살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골프를 치면서 우리는 정치 논쟁과 비슷하게 어느 정도 터부시되는 돈 내기를 하기도 한다. 돈을 잃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잃고 매너 잃는 바보도 있지만, 대부분은 돈만 잃고 만다. 다음 기회에는 칼을 갈아서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전자의 정치 논쟁이나 후자의 골프에서의 내기가 그 결론을 달리 하는 이유와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골프는 처음 시작할 때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서로 웃으면서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그러나 정치 논쟁에서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틀리다거나 생각하기 십상이다. 자기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골프에서는 상대방의 드라이버나 아이언이 멋있으면 “굿샷”이라고 칭찬을 한다. 간혹 돈이 걸린 각박한 경기 중에도 서로에게 칭찬해주는 것이다. 경기 중에 잘 치는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점을 배우려고도 한다. 그러나 정치논쟁에서는 서로 간의 칭찬이나 서로에게 배우려는 자세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골프내기에서는 서로 반드시 지켜야 되는 룰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속에서 내기나 게임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만큼 다른 종교에 대한 또는 같은 종교 내에서도 그 분파 대립이 잘 절제되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불교계에 전해오는, 또는 우리 민족의 피를 통해서 전해오는 화쟁사상(和諍思想)이 그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우리가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화합해야 하고,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논쟁한다라는 화쟁사상을 전개한 바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서로 같기 때문에 화합해야 하는 게 아니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속칭 ‘노사모’ 내에서나 ‘박사모’ 내에서 오히려 논쟁이 필요하고 상대방 간에 화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억불책 속에서도 불교가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왕실과 유생들의 탄압을 ‘쟁’으로 맞서기 보다는 ‘화’의 정신에 입각하여 ‘쟁’을 이겨나갔고, 오히려 ‘쟁’을 ‘화’로 승화시켜 그들을 교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속칭 ‘노사모’나 ‘박사모’들도 서로 같기 때문에 논쟁해야겠지만,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깊은 대화가 우러나올 수 있다면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소통 속에서 화합해야만 한다. 정치논쟁도 골프처럼 상대방의 주장 중에 칭찬할 것이 있으면 칭찬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운다는 자세를 가지고 해보면 어떨까.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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