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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성곽도시 울산을 말하다
[성곽도시 울산을 말하다]방어진목장에 축원당 3곳…동축사·월봉암이 대표적(29)남목마성 제5편- 남목마성과 여러 시설들
(축원당=목마의 번식·무병 기도하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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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9  22: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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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2년 울산목장지도.

남목마성의 축조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역의 연구자들에 의해 <울산목장목지>(蔚山牧場牧誌, 1871) 등 여러 문헌에 기록된 ‘칠읍발군축성(七邑發軍築城)’이나 ‘칠읍갱축(七邑更築)’ 등의 내용을 근거로 당시 7개 고을(邑)의 군정(軍丁)들을 동원하여 쌓았음이 밝혀졌다. 이 7개 지역이 어디냐를 두고 지금까지 멀리 문경에서부터 하양, 언양, 울산, 청도 외에 영천, 경주, 밀양, 양산 등 울산 인근의 여러 지역들이 언급되어져 왔다. 이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목장성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 이정한 선생의 노력으로 남목삼거리~현대중공업에 이르는 능선구간의 가운데 지점 일원에서 ‘청도(淸道)’와 ‘언양(彦陽)’의 명문석(銘文石)이 발견됨으로써 그 실마리가 풀려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수 년 전 이철영 울산과학대학교 교수와 필자가 학술조사를 진행하던 중 ‘청도’와 ‘언양’ 명문석 주변에서 2기의 명문석(銘文石)을 새롭게 확인한 바 있다. 그 중 하나는 축성지역과 관련된 것으로 가로 60㎝, 세로 48cm 크기의 세워쌓기 성돌에 새겨진 ‘이상흥해(已上興海)’라는 글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남목삼거리 방면의 능선 아래로 약 135m 떨어진 해발 85m 지점의 큰 바위에도 세로쓰기한 명문이 남아 있다. 그 내용은 ‘청도삼백칠십칠보 순치팔년신묘삼월일(淸道三百七十七步 順治八年辛卯三月日)’로 순치 팔년(1651) 신묘 삼월에 청도 사람들이 377보(步)를 쌓았다는 내용이다. 이를 정리하면, 이미 밝혀진 청도(淸道)·언양(彦陽) 외에 추가로 흥해(興海)지역 사람들도 남목마성을 쌓는데 동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쌓았던 남목마성의 영역구성은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제작한 ‘목장지도’에 잘 표현되어 있다. 방어진목장은 전체 목장영역을 2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있다. 즉 염포삼거리에서부터 남목삼거리를 지나 미포 해안의 현대중공업 일원으로 이어지는 돌로 쌓은 성벽 외에 방어진반도의 중간쯤 되는 지금의 화정동과 일산동의 경계를 따라 목책(木柵)이 하나 더 설치되었다. 방어진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목책의 중간에는 지붕을 씌운 출입문도 두었다.

축성지역 명문석 발견
청도·언양·흥해 등 7개 지역
남목마성 쌓는데 동원 됐을듯

목책으로 공간 구분
목초가 자라면 번갈아 말 방목
겨울엔 마구간·음수지 쪽 배치

원형의 흙둑 발견
임금에 진상·군수물자 보급차
좋은 말 골라내는 시설로 추정

목장내 관아 존재
1803년 이정엄 ‘동해유행기’에
화려한 남목 관아의 모습 묘사


이처럼 방어진목장 내에 별도의 목책을 둘러 2개의 공간으로 나눈 이유는 몇 가지 측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전체 공간을 두 곳으로 분리하여 한 곳의 목초가 충분히 자라게 한 후 번갈아가며 말을 방목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목장 내에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방어진반도 남쪽지역에 말이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임시로 지은 집, 즉 마구간과 같은 시설을 음수지와 함께 집중 배치하여 방목이 어려운 겨울철에 목책 내에서 안전하게 말을 사육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목장의 내부공간을 구획한 목장으로는 방어진목장 외에도 부산의 오해야항목장이 있다. 방어진목장보다 규모가 더 컸던 오해야항목장은 ‘외성(外城)’ ‘중성(中城)’ ‘내성(內城)’으로 불리는 석축 울타리를 쌓아 전체 공간을 3개 구역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 언양(彦陽) 명문석(銘文石

한편 목장 안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목자나 둔전을 경작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여러 부역(賦役)에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 마성과 목장내부 목책[木柵]의 수축, 음수지(飮水池)의 수리와 굴착, 말의 상태 점검과 임금에게 바칠 진상마(進上馬) 골라내기(착출·捉出), 목초와 곡초(穀草) 납부 등의 일을 행하였다. 그 시기를 보면 마성 수축의 경우 매년 8월에, 음수지 수리와 굴착은 매년 2월에 실시하였다. 더불어 목마가 비나 눈을 피할 수 있는 임시 마구간(國馬避雨雪假家)의 수축은 매년 11월에 있었다. 진상마 착출(捉出)은 매년 9~10월에 거행하여 다음해 봄에 봉납하였다. 이러한 여러 일들 중에서 말의 상태를 점검하고 진상마를 착출하는 일은 더욱 중요했는데 그와 관련된 시설을 ‘환장(環場)’ 또는 ‘원장(圓場)’이라고 하며 남목마성에는 그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염포삼거리~남목삼거리의 골짜기 구간 중 남목중학교 남쪽 산기슭 부분에서 한쪽 귀퉁이가 트인 ‘○’형태의 토루(土壘, 흙으로 쌓은 둑)가 확인된다. 이것은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제작한 ‘목장지도’에서 문(門)으로 표현된 것과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형태가 둥근 것을 볼 때 그 내부에 말을 풀어 원을 따라 뛰어 다니게 하여 말의 상태를 관찰하고 좋은 말을 골라내는 일명 ‘점마(點馬)’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이러한 ‘점마’는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했고, 다음으로 각 병영 등 육군에 군수물자로 보급하기 위한 것과 지방의 각 역참(驛站)에 운송수단으로 말을 비치하기 위한 것 등이 있었다. 특히 지방 각 도의 역참 일을 맡아보던 찰방(察訪) 혹은 마관(馬官)들이 관할 지역 내 또는 그 인근에 위치한 목장(마성)에 와서 서로 좋은 말을 골라가기 위해 노력했음을 감안하면, 이 것은 남목마성의 매우 중요한 시설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외에 방어진목장에는 목마의 번식과 무병을 기도하는 축원당(祝願堂)이 3곳에 있어 3월과 10월에 마신(馬神)에게 제향(祭享)을 올렸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동축사와 월봉암이다.

   
▲ 청도(淸道) 명문석(銘文石).

그리고 목장(마성) 안에는 그것을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한 관아, 즉 공해(公廨)가 있었는데, 여느 읍성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동헌(東軒)과 내아(內衙)이다. 감목관 집무실인 동헌(東軒)은 10칸 규모였고, 내중문(內中門) 1칸, 서협문(西挾門) 1칸, 동협공고(東挾工庫) 2칸, 급창방(吸唱房) 1칸, 책실(冊室) 3칸, 대문 3칸, 사령방(使令房) 2칸이 딸려 있었다. 그리고 감목관의 관사인 내아(內衙)는 8칸인데, 여기에 딸린 건물도 행랑(行廊) 3칸(間), 대문(大門) 1칸(間)이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는데, 1800년대 초 남목 관아의 모습을 묘사한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남옥(목)에 도착하니 곧 감목관(監牧官)의 아문(牙門)이었다. 관사(官舍)와 누각(樓閣)은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였으며…연리방(椽吏房)에 입사(入舍)한 유람객이 그 곳에 들어오면 스스로 청중(廳中)이 아침밥과 저녁밥을 대접했는데 이로부터 옛 규정의 반찬거리는 매우 사치스럽고 맛이 좋아 비록 서울의 호화스러운 집안의 손님을 맞는 공구(供具)라도 이를 넘지 않는 것이었다….’

이 글은 1803년 경 경주 양동마을에 거주하였던, 이정엄(李鼎儼, 1755~1831)이 울산과 동해안을 둘러보며 적은 ‘동해유행기’(東海遊行記) 중의 일부분이다.

고지도에 나타나는 남목마성(방어진목장)은 그 위치만 표시하였을 뿐 구체적인 성곽의 모습은 표현되어 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1872년에 제작된 ‘울산목장지도’에는 중심 관아(관기·官基)와 점마소 및 관련 지명들이 표기되어 있어 현재의 지명과 비교해 볼 수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여러 고지도에는 목장성의 명칭을 한결같이 ‘목장마성’(牧場馬城) 또는 줄여서 ‘마성’(馬城)이나 ‘목소’(牧所)라고 기재하였는데 이는 말을 기르기 위해 쌓은 성곽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우리 선조들은 남목마성의 축조 목적이나 기능이 여타 읍성 및 전투용 성곽과는 다름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보다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 남목마성에 내재된 의미와 가치, 다양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발굴, 정립됨으로써 울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창업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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