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애 울산과학고등학교 교사

교직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보면 뜻밖에도 책임을 져야 할 일들이 일어날 때가 많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을 떠맡게 되거나 전에는 그저 그렇게 결정되었던 일들에 내가 꼭 참여해야 한다거나. 아마도 그것은 이제 ‘밥값’을 톡톡히 해야 할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실의 정적을 깨는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 저 멀리 굵직굵직한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쌤, 잘 계세요. 쌤 저 요새 시간 많아요. 헤헤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웃음소리는 여전하다. “야, 이 자식, 어, 어, 어째 지내? 어, 어, 그래? 엉, 근데 쌤 수업이다. 어, 어, 나중 통화하자. 미안하데.” 담임으로 만난 학생이 아니기에 그 제자와의 긴 인연이 새삼스러웠다.

고3이던 그 아이는 나에게 종종 대학 진학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 아이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 인연으로 학교 졸업 후 “쌤”하며 안부를 물었고 입대 전, 휴가 나올 때, 취직을 했을 때 간간이 소식을 전하면서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다. 그러다가 가정일이나 학교일 등으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는 날이 많아 번번이 내 쪽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한 2년쯤 연락이 끊겨 버렸다.

“쌤, 뵙고 싶어요. 이번에는 제가 그냥 모시러 가겠습니다. 쌤은 시간만 비워 놓으세요.” 제자의 말을 듣는 순간 걱정이 앞섰다. 동구에 사는 그가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오려면 족히 1시간 이상이 걸린다. 내가 시내로 가겠다고 말렸지만 직접 오겠단다. ‘쌤, 주자창에 왔어요.’ 휴대전화에서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하필 오늘 이렇게 추울 게 뭐람. 이래 추운데 여기까징….’ 해가 멀겋게 떠 있었지만 유난히 고추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 메타세쿼이아 잎들이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추운데, 이까징 왜 오노?” 10년 전 까만 교복을 입은 철없던 모습이 떠오르면서도 벌써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서인지 낯설게 느껴졌다.

유독 작년에 울산 경제가 하향으로 치달으면서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때문에 제자가 몸담았던 회사의 분위기도 날이 갈수록 어수선해졌고 그것을 하루하루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 자진하여 나왔다고 한다. ‘취준생’으로 앉아 있는 그를 걱정하는 선생에게 “괜찮아요. 쌤. 준비하고 있어요. 밥값은 해야죠.” 하고 씩씩하게 웃었다. 밥값이라. 너도 이제 밥값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

누구나 밥값 할 때가 온다.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라는 정호승의 <밥값>이라는 구절처럼 ‘밥값’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라는 물음이 담겨 있다. 제자의 나이쯤에 밥값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처럼 내 나이쯤 된 제자가 그때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것이 밥값이며 어떻게 밥값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몫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그의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김국애 울산과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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