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 조사에 차분히 대비해왔으나 막상 ‘뇌물공여 피의자’로 출석하라는 통보가 날아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은 그룹 내 ‘2인자’로 알려진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조사까지 진행된 터라 남은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밖에 없어서 특검의 소환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특검이 11일 이 부회장에게 소환을 통보하면서 ‘뇌물공여 피의자’로 지목하자 구속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냐며 위기감에 휩싸였다.

이 부회장이 12일 특검에 출석하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두 번째로 수사기관에 불려들어가는 셈이 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13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검찰 조사와 이번 특검의 소환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삼성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다른 그룹 총수들과 함께 비공개로 출석해 박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과 두 재단 출연 간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대가 관계가 딱 떨어지지 않아 사법처리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특검은 두 재단의 출연 배경보다는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에 초점을 맞춰 고강도 수사를 벌여왔다.

최씨 모녀에게 약 80억원 상당의 지원을 하는 결정의 정점에 이재용 부회장이 있다고 특검은 의심하고 있다.

삼성은 그러나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면담 직후 승마협회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독려했을지언정, 최씨 모녀와 관련한 금품 전달까지 세세히 챙기거나 보고받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은 최씨 모녀의 승마 지원과 무관하기 때문에 이 두 건을 연결지어 뇌물 혐의를 씌우려는 특검의 움직임은 ‘프레임 수사’라는 게 삼성의 일관된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기본적으로 특검 조사를 성실히 받을 것”이라며 “특검 수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승마 지원이 완전히 별개라는 사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출석하면 조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열어놓고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삼성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인 삼성 리더십에 공백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삼성이 진행 중인 사업재편이나 지주사 전환, 인수합병 등 굵직한 현안이 올스톱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유고 사태가 오면 모든 업무에 크고 작은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리스크가 있는 투자는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檢서 “안종범 지시·VIP 관심사항…기금 거절 어려워”

한편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이라는 거금을 출연한 삼성그룹 측이 검찰 조사에서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청와대 경제수석 지시라 기금 출연을 거절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연금 모금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는 취지다.

검찰은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비선 실세’ 최순실(61)씨 등의 2차 공판에서 삼성 미래전략실 김모 전무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김 전무는 “우리는 자금 출연만 했지 재단 설립 목적이나 운영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며 “우리가 주도하거나 자발적으로 설립한 게 아니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청와대로부터 지시받은 돈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제가 아는 게 한류 확산, 문화 융성이라는 취지 정도밖에 없어서 위에 보고할 게 없었다”며 “경제수석이 지시했고, VIP 관심사항이라는 걸 보고드렸기 때문에 모두 빨리 추진하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 전무는 “청와대 경제수석 지시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그 과정에서 “박찬호 전경련 전무가 갑자기 연락 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기간까지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며 서둘렀다”면서 당시 박 전무가 했던 발언도 그대로 전했다.

“경제수석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VIP께서 재단 설립이 왜 이리 더디냐고 나무랐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 기간에 MOU를 맺기로 했는데 마땅한 재단이 없다고 한다”는 게 당시 박 전무의 말이었다.

리커창 총리의 방한에 맞춰 재단 설립을 서둘렀다는 검찰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김 전무는 또 “만약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얘기했다면 전경련에서 크게 의미 두지 않았을 것”이라며“경제수석이란 자리가 국가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위치라 기업들로서는 모금 지시를 거부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K스포츠재단에 대해서도 “’문화‘ 대신 ’스포츠‘라고 말만 바꾼 거지 설립취지나 사업 내용 등을 확인할 문건은 전혀 없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재단 이사진 구성 등은 알려 하지도 않았고, 재단 측에서 알려주지도 않았다는 게 김 전무 진술이다.

그는 당시 기금 모금이 “아무런 이의나 이견 없이 진행됐다”며 “안 전 수석이 막강한 영향력으로 전경련을 통해 일방적으로 지시한 거라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기업들은 거절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기업으로서는 각 기업이 갖는 현안을 고려해서 청와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걸 두려워해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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