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1930년대 중일전쟁 발발 시점을 1937년 노구교(盧構橋) 사건에서 1931년 만주사변으로 바꾸기로 했다.

대일 항전 기간 중국 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애국주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11일 신경보에 따르면 중국 교육부는 최근 일본과의 전쟁 기간을 8년에서 1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역사교과서 개정을 각급 교육기관에 지시하고 올해 봄학기부터 전면 적용하기로 했다.

중국 교육부 기초교육2사(司)는 지난 3일 각 지방당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14년 항전’ 개념의 관철 정신에 따라 모든 초중고교 교재의 수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육당국은 봄학기 개학 이전 각급 학교 교재에 기존의 ‘8년 항전’이라는 용어가 ‘14년 항전’으로 바뀌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교육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14년 항전’ 개념은 중국 공산당 중앙의 정신을 관철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10월 내려진 국무원의 이행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중국에서 통용됐던 ‘8년 항전’은 1937년 7월7일 베이징 노구교에서 빚어진 중일 양국군의 충돌에서부터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까지를 일컫는 용어다.

노구교사건 직후 장제스(蔣介石)가 “이젠 땅의 남북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구분치 않고 모두 국토를 수호하고 항전에 나서야할 책임이 있다”고 밝힌 것을 사실상 항일전쟁 개시 선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던 중국 당국은 1931년 9월18일 선양(瀋陽) 류탸오후(柳條湖) 부근에서 일본군이 건설중이던 남만 철도의 폭발로 시작된 만주사변을 항일전쟁 발발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주사변후 일본 관동군은 장쉐량(張學良)이 주도하던 동북군을 기습한 뒤 수개월만에 동북지역을 장악하고 만주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장제스는 당시 만주사변 직후 ‘양외필선안내’(攘外必先安內·밖을 막으려면 안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를 주장하며 일본군보다는 공산군 토벌하는데 집중했다.

중국 공산당은 장제스의 대일 유화책이 동북지역을 내준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며 홍군이 참여한 동북항일연군이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본군과 항전에 나선 것을 강조했다. 장제스의 대일 항전 선언보다 중국 공산당의 항전 결행이 훨씬 앞섰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 강요’에서도 “만주사변 발생 당시 국민당 정부는 일본의 침략에 대해 ’도리‘를 얘기하면서 그 역량을 ’공산당 소탕‘에 집중했다”고 비판했다.

중국 학자들은 ‘14년 항전’의 개념이 중국 역사의 시대적 구분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당과 공산당이 항일전쟁 과정에서 벌인 역할 및 위상과도 크게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평론을 통해 “일본의 침략에 항거한 중국 공산당의 기능과 함께 중국이 파시즘 항거의 주요 전장이었음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항일 전쟁사에서 차지하는 1931년 만주사변의 의미를 중시하며 ‘14년 항전’을 공식화해왔다.

지난 2014년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69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14개 방진대열, 14발의 예포, 140개 깃발, 1만4000개 풍선 등으로 ‘14년 항전’의 의미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장제스를 계승한 대만은 여전히 1937년 노구교사건이 중일전쟁의 발단이었다고 보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은 “역사를 마주하면 진실은 하나 뿐이다. ‘8년 항전’은 중화민국 정부가 주도했던 것이고 항전승리는 장제스가 이끌었던 전국의 군인, 민간 영웅들의 분투 성과다. 그 어떤 첨삭도, 왜곡도 용인치 않는다”고 말했다.

류웨이카이(劉維開) 대만 정치대 역사학과 교수는 “중국의 이번 조치는 항전사에서 공산당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14년 항전‘ 주장으로는 전면적인 항일전쟁의 개시가 이뤄졌던 노구교 사건의 의미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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