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 <설국(雪國)>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쿄 출생인 시마무라가 설국의 기생 고마코에게 끌려서 설국의 온천장을 3번이나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1948년 발표됐고,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나이 든 장년들은 1월이 되면 설국의 환상을 떠올린다.

울산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시기는 1월이고 그 장소는 가지산(1240.9m)이다. 시내에서 보면 고헌산(1034.1m) 능선이 허옇게 바라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설국은 가지산에 펼쳐진다. 가지산 눈꽃(사진)은 중봉에 도달하기 전 쯤부터 점입가경이다가 중봉과 정상 사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곳에서는 눈과 서리, 얼음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세계가 펼쳐진다. 지난 6일 영남알프스 7부 능선 위쪽은 그야말로 설국이었다.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만들어내는 것을 눈꽃(雪花)이라고 한다면 상고대는 대기 중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것을 말한다. 서릿발로 변한 수증기가 나뭇가지를 두텁게 에워싸면서 환상의 꽃을 만들어낸다. 이 서릿발이 녹으면서 나뭇가지에 얼음으로 매달린 것은 수빙(樹氷)이라고 한다. 여기에 눈가루가 바람에 날리면서 나뭇가지의 상고대나 수빙 위에 달라 붙으면 또다른 환상의 꽃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상고대와 눈꽃을 쳐주는 곳으로는 태백산과 덕유산, 한라산, 오대산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가지산도 이들 산 못지 않은 설국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다만 가지산에 눈 내린 정보를 시내에 있는 시민들이 제때 알지 못해 태백산이나 한라산으로 떠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관광울산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이재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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