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본 야경

 

겨울 낮은 짧다. 오후 5시30분, 갈 길 바쁜 길손처럼 한낮을 비추던 해가 가파르게 내려앉고 있다. 남구 매암동에서 출발해 장생포 고래박물관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방향으로 차선을 바꾼다. 곧 ‘울산대교’라는 흰색 글씨가 도로 바닥에 화살표와 함께 큼직하게 적혀 있다. 차량 속도를 다리 주행속도인 시속 70㎞에 맞춰 올려본다. 약 25도 남짓한 각도의 도로 위로 올라서자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다 한 순간 땅을 딛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 한 상승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곧 나타났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마지막 햇살을 받아 황금물결로 반짝거리는 수면 위 거대한 현수교의 모습이.

기술력·디자인 인정받은 울산대교
화려한 빛 대신 주변 경관과 조화
울산대교 전망대서 바라본 야경
현대車·현대重·유화공단 ‘한눈에’
검은바다 위에 그린 밤의 그림
울산의 관광자원으로 ‘우뚝’

예부터 풍광 좋은 곳을 대신하는 말로 6경, 8경, 10경, 12경 등이 있다. 이 경(景)의 유래는 중국의 소상8경(瀟湘八景)을 본따 붙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중국의 명승지 후난 성 동정호 남쪽 언덕 양자강 중류에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물이 합쳐져 동정호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곳의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송나라 시대 이성(李成)이란 화가가 ‘소상8경도(瀟湘八景圖)’라는 이름으로 이 자연 풍광을 화폭에 담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그림에는 그곳의 여덟 가지 각각 다른 사계(四季)의 경치가 담겨져 있어, 이를 두고 팔경이라 이름 짓고, 이후 이 소상8경은 자연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정서를 대신하는 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고장의 명승을 소상8경도에 대입시켜 시화(詩畵)로 만들게 되었으니, 이것이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8경, 혹은 12경의 유래가 된 것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방마다 여러 경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 가운데는 울산8경 또한 속해 있었다. 그 후 범위가 8경에서 12경으로 확대돼 오늘날 ‘울산 12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12경도 2002년 지정 이후 14년 만인 2016년에 새로운 ‘울산 12경’으로 정비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이다.

교각 사이 아래로 곧게 늘어뜨린 다리를 일러 현수교라 한다. 교각과 교각 사이를 줄로 연결해 다리가 매달려 있는 모습을 한 울산대교(蔚山大橋)는 현수교이다. 이 다리는 길이 1800m로 울산의 새로운 랜드 마크이다.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인 단경간이 1150m인 현수교로서 최장 단경간인 중국 룬양대교, 장진대교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 경간거리 즉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기술력을 인정받는바, 첨단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건축물인 것이다. 또한 울산대교는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우리나라 최고 디자인 상품을 선정하는 ‘2016년 우수디자인 상품 선정’에서 우수디자인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울산대교는 다른 대교들에 비해 조명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데, 그 이유를 우수 디자인 선정심사평에서 찾을 수가 있다.

▲ 울산대교 야경

‘울산대교는 산업단지와 자연경관의 조화를 고려한 미려한 곡선의 현수교로 Ulsan의 머리글자인 ‘U’를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설계한 주탑 상부 그리고 케이블 등과 함께 대교 밑을 오고가는 야간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최대한 고려한 디자인이다’는 것이다. 즉, 인공조명으로 인한 선박 운행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화려한 빛을 절제하는 대신,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야간 경관을 연출함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데 있다.

다리 구간이 끝나고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 어느 듯 소리 없이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울산 동구청 방면으로 방향을 틀자 길가에 표지판이 보인다. 울산대교 개통을 기념해 대교 동쪽 진입로 부근 화정산에 전망대를 설치해 울산시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고 있으니, 이름 하여 ‘울산대교전망대’이다. 해발 140m의 산에 63m 높이의 전망대를 세운 것은, 울산대교 주탑의 높이 203m에 맞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산 정상에 자리한 전망대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3층에서 열린다. 그리고 곧 울산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하늘위에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 한 느낌에 잠시 우쭐해진다. 전망대에서는 울산의 동서남북을 동시에 전망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가지산을 비롯해 일명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산들로, 수려한 산세와 함께 왜 울산이 울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전망대에서 산을 바라보면 그 답이 금방 나온다.

또한 태화강이 흘러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북서쪽을 바라보면 배 한 척당 많게는 7000여대까지 차량을 실을 수 있다고 하는 4만t급 차량운반선 3척이 동시에 정박이 가능한 현대자동차 전용부두가 보인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울산석유화학단지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규모의 기름 및 가스를 저장하는 탱크들이 보이는가하면, 과거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장생포항 또한 눈에 들어온다.

끝으로 동쪽으로 붉은색의 웅장한 크레인들이 보이는 곳은 현대중공업 및 현대미포조선으로, 1973년 25만t급 유조선 7301호의 건조를 시작으로 한때 세계 제1위의 조선소로 괄목한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메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울산대교 전망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야경에 있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 그 달빛과 함께 울산의 야경을 보는 즐거움이야말로 잠시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겨울야경이다. 겨울은 빛의 마법이 통하는 계절이다. 칠흑 같은 검은 바다 위로 휘영청 달빛과 함께 불빛이 밤을 물들이고 있다. 불빛으로 그린 밤의 그림, 울산야경이다.

▲ 홍중표 자유기고가 (전)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또한 울산의 공단 불빛은 한마디로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쉬는 법이 없고 그치는 순간이 없다. 빛이 곧 문화자원이 되고 야경이 곧 관광자원이 되는 시대이다. 빛의 도시를 꿈꾸는 울산, 산업도시가 이제 아름다운 야간조명 연출로 인해 매력적인 야경의 도시를 꿈꾸고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달려든다. 하지만 왠지 가슴은 따뜻하다. 설레는 불빛이 겨우내 움츠렸던 심장에 스며들어 가슴을 따사롭게 한 덕분이리라. 그렇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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