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주경 시인<울산작가> 편집국장

모름지기 시인은 무당과 같은 존재다. 작두를 타고 접신한 듯 대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호흡한다. 하여, 시인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슬픔과 고통을 노래하며, 시대의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사람이다’

“황 시인” 누가 나를 이렇게 부르면 얼굴부터 화끈거린다. 등단한 지 꽤 됐지만 변변한 시집도 한 권 없는 인사? 변방의 삼류 시인? 둘 다 맞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설익어 보이는 내 시어들 때문이다. 우는 거로 따지면 모를까 이처럼 나는 시인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정체성의 혼란을 말끔히 걷어 낼 수 있었다. 이게 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덕분이라면? 그렇다. 나는 블랙리스트 시인이다. 필자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청와대에서 관리하는 엄중한 시인.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그들은 내게 검은 딱지를 붙였다. 역설적이게도 블랙리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시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은 아이들은 끝내 ‘살아 돌아오라’는 숙제를 다 하지 못했다. 이후 나는 바다만, 아니 찰랑거리는 물결만 바라봐도 그저 눈물이 쏟아지는 현상이 생겨났다. 분명한 건 우리는 이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후 더 무서웠던 건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광기였다. 참사 한 달 만에 추모 분위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단순 교통사고에 비유 하는 사람, 유가족들을 향한 손가락질도 생겨났다. 추모 공간은 냉대와 멸시의 장소가 되었으며, 유가족들은 위로가 아닌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해가는 사회에서 우리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성명을 발표하는 일뿐이었다.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정권의 문학예술계 탄압은 극에 달했다. 통치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예술가나 단체는 모두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영화 ‘천안함프로젝트’ 개봉 중단, 세월호영화 ‘다이빙벨’ 상영 거부,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이 전시장에서 쫓겨났다. 이 같은 일련의 문화예술계 탄압행위는 박근혜 정권의 예술에 대한 파시즘적 발로라 생각했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건이 터져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전까지는.

탄핵 이후 특검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 중이다. 지금은 세월호에 냉소적이던 보수언론까지 집요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은 금기어였다. 청와대는 ‘관저 집무’ ‘언론 오보’ 등의 궤변만을 늘어놓아 세간의 의혹을 증폭시켰다. 도대체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을 왜 시원하게 밝히지 못할까? 생떼같은 아이들이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구조보다도 더 급한 대통령의 용무는 무엇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후 문화예술인들이 박대통령에게 끊임없이 ‘대한민국의 통치자로서 헌법이 규정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해답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보복이었다면?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말 그대로 격리대상 예술인의 목록이다. 이는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을 뿐 예술가의 영혼을 무형의 감옥에 가둔 행위이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문화 행정을 파괴하고 검열을 자행한 정권. 차라리 통치자가 원하는 작품을 기획할 줄 아는 화이트 리스트를 적극적으로 관리 할 일이지. 블랙리스트는 그 자체가 대의제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의혹처럼 대통령의 지시 정황이 밝혀진다면 이 건만으로도 박대통령의 탄핵인용은 충분할 것이다.

요즘 필자는 블랙리스트 시인으로 통한다. 국가가 관리하고 울산시에서 20여 명 안팎에 드는 문화예술인. 문우들과 모임에서도 “어이 블랙리스트 시인, 한잔 받지” 하면 나는 “싱거운 사람” 하면서 기꺼이 잔을 받아 든다. 한편으로 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것을 서운해 하는 인사도 많다. 아이는 가족모임 밴드에 블랙리스트가 된 제 아빠의 기사를 링크 걸며 은근히 자랑하는 눈치다. 블랙리스트라서 참으로 다행이다.

황주경 시인<울산작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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