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브로브닉을 대표하는 최고의 도시경관은 성벽이다. 성벽 길을 걸으며 조우하게 되는 감동적 풍경의 도시와 바다를 바라보며 울산지역 성곽의 경제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로아티아의 남쪽 해안에서 아드리아 해의 보석, 드브로브닉과 만난다. ‘꽃 누나’들을 설레게 했던 바로 그곳이다. 우선 도시 북쪽에 있는 스루지 산에 올라 도시전체를 내려다본다. 거대한 캔버스에 담긴 강렬한 색상의 유화가 수평선까지 펼쳐진다. 아드리아 해의 짙푸른 쪽빛 바다, 그 바다 위에 동글동글 떠있는 초록의 섬, 육중한 회색 성벽, 주황색 기와지붕과 하얀 벽의 모자이크, 이것은 다채로운 색상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이다. 한숨 밖에는 이 절경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원경만으로도 가히 세계문화유산이라 할 것이다.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닉의 백미는
성벽을 따라 걷는 ‘둘레길 투어’
연간 숙박객만 360만명 인산인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 도시가 특별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드리아해에 면한 성곽도시의 하나로서 중세유럽식의 도시와 건축을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현재의 모습은 반복적인 재건과 복원의 과정을 거쳐 재현된 결과물이다. 1667년의 대지진, 특히 1990년대 초 구(舊) 유고 해체 전쟁 등 도시를 폐허로 만들 정도의 파괴가 이루어졌다. 옛 시가 건물의 68%가 폭격을 당하고 이것을 재건하는데 100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재건과 복원을 위한 끈질긴 노력이 오늘날의 드브로브닉을 최고의 역사도시로 만들어냈고, 그것을 자산으로 최고의 관광도시로 경제적 부활을 이끌어 낸 것이다.

드브로브닉은 도로체계와 함께 유서 깊고 아름다운 중세건축의 걸작들을 풍부하게 보존하고 있다. 중심가로인 프라차 대로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건축 작품들은 마치 도시 전체가 중세건축양식을 전시하는 갤러리인듯 착각하게 만든다. 르네상스 양식의 렉터 궁전과 바로크 양식의 성모승천 대성당, 그리고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스폰자 궁전이 광장의 핵을 이룬다.

그러나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몇몇 역사적 건물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성안의 모든 일반건물, 심지어 성 밖에 근래에 지은 건물들까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경관의 아름다움에서 발원한다. 규모가 약간씩 다르지만 석재 조적조의 벽체와 경사지붕, 주황색 스페니시 기와, 창호디자인 등의 양식적 통일성은 시대적, 지역적 콘텍스트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콘텍스트가 성곽의 외부지역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경탄스럽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의나 합의가 없었더라면 결코 성립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브로브닉을 대표하는 최고의 도시경관은 따로 있다. 바로 성벽이다. 성벽 길을 걸으며 조우하는 도시풍경, 해경은 단연 최고의 감동적 장면을 연출한다. 때문에 성벽 둘레길 투어는 드브로브닉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 된다. 100쿠나(약 1만7000원)의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종목을 선택한다.

성벽 길은 가파른 지형을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성벽의 위치와 높낮이에 따라 성 안팎의 다양한 경관이 연출된다. 길은 좁았다가 넓어지기를 반복하며 쉬어가는 데크를 만들기도 한다. 아기자기한 성안의 모습을 담아주기도 하고, 절벽을 오르내리며 바다와 만나기도 하며, 산을 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성벽이라는 구조를 통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둘레길이다.

오늘날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바로 이 성벽 길을 걷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성벽 길 하나가 도시와 국가를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드브로브닉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체감되는 생활물가는 스페인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인산인해로 몰려들어 숙박객만 1년에 360만명에 이른다. 심지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성벽을 보존하는데 문제가 있으니 입장객수를 제한하자는 배부른 소리까지 나온다. 내년부터는 성벽 입장료를 150쿠나로 올릴 예정이란다. 많은 전란과 재해로 입은 파괴를 복원하는데 10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면, 오늘날 이들은 일 년에 그 다섯 배가 넘는 관광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성곽이 없었을까? 수원화성은 그 건설기록만으로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운 성곽이다. 촉석루에 올라 진주성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문을 보라. 별로 볼거리도 없는 낙안읍성이 어떻게 도시를 먹여 살리는지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성곽만큼 천대받은 문화재는 없으리라. 전근대적 골동품으로서, 도시발전의 장애물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에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헐어내고, 동강 내는 일을 무수히 저질러 왔다. 그나마 지정된 문화재도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는 오명과 눈총 속에 흔적 남기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황혼에 물든 드브로브닉 성곽은 항구에 정박한 군함처럼 당당하고 격조가 있다. 비록 수백년이 지난 골동품의 도시지만 현대 도시가 감히 따라 갈 수 없는 위용과 품격을 뿜어낸다. 어쩌면 묵은 간장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귀해지는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을 통해 나를 보여 주는 것. 발칸의 바닷가에서 그들 속의 비친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생각한다. 진정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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