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극심한 사회 혼란
지금의 위기를 도약 기회로 전환
희망을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할때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지난해부터 흥행 중인 영화가 있다. 원전사고를 다루고 있는 ‘판도라’다. 사상 최대의 강진에 이어 원전사고까지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컨트롤 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을 앞두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정말 다행스럽게도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사태는 수습국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미 시기를 일실, 결국 발전소 현장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대처함으로써 최악의 사태는 막게 된다.

내용이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사고의 정도를 축소한다든지 보고를 묵살하는 등의 장면에서는 재직 시의 몇몇 에피소드들이 생각나 쓴 웃음을 짓곤 했다. 후반부로 가면서, 발전소 현장 직원들이 “죽으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리러 들어가는 것이데이!”라며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발전소로 들어가는 살신성인의 희생정신과 가족에 대한 인간애 등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많았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기 위해 다른 신을 시켜 흙으로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다. 판도라가 호기심에 상자를 열게 되고 상자 속에 있던 나쁜 것들이 인간 세상에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이에 놀란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았지만 속에 있던 불행과 질병, 고통 등 온갖 해로운 것들이 다 빠져 나온 뒤였고, 남은 것은 오로지 상자 바닥에 깔려 있던 희망뿐이었다. 이후 평온했던 인류는 재앙에 휩싸인다.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 가슴 속 ‘판도라의 상자’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까? 우선 영화에서도 나온 것처럼 다른 사람이나 국가가 어떻게 되든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있을 것이다. 제도와 매뉴얼이 있는데도 ‘설마 괜찮겠지’하면서 대충했다가 위기가 코앞에 닥쳐서야 정신을 차리는 안전불감증,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근성도 상자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음이 틀림없다. 대개 자칭 엘리트라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만과 다른 사람의 의견이야 어떻든 자기 생각대로만 밀어붙이는 독선도 적잖이 숨어 있지 않을까.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비굴함,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실패했을 때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비겁함,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핑계를 대며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비열함 등 부끄러운 점들도 정말 많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소위 ‘최순실 사태’라 불리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 때문에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큰 혼란에 빠졌다. 국제적인 이미지도 크게 실추됐고, 안 그래도 대내외 여건이 나빠 힘들어진 경제가 설상가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사태도 결국 후진적 사고체계와 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쁜 기억을 많이 남겨준 병신년(丙申年)이 가고 새해가 되었다. 일본의 소설가 모리사와 아키오는 그의 작품 <당신에게>에서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어도 미래와 나는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정치적인 혼란은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갈등 등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난제들을 안고 있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마다 뭉치고 지혜를 발휘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골든 타임’이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 상자 속에 있던 나쁜 것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처럼 나쁜 것들이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면 오히려 활짝 열어 배출시켜 버려야 할 것이다. 버려야 채울 수 있다. 비워진 상자 속을 제각각 건전한 생각과 행태들로 가득 채운다면 서로 신뢰하고 도우면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경제지표만 좋아진다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과 제도의 선진화를 통해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위기를 선진국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우리 가슴 속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 희망을 키워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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