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대통령을 가지지 못했을까
지금 자리에서 각자의 소명 다해야
민주주의 위해 투표권 행사 사명감

▲ 강혜경 경성대 가정학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지난 10일(현지시각) 퇴임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연설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당신들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변화란 보통 사람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지고 요구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몇 달째 이어져오고 있는 촛불시위의 현실에서 그의 고별연설은 자꾸만 되새김질되었다. 왜 우리는 더 좋은 대통령을 가지지 못했는지? 그 수많은 촛불이 소망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이제까지 성장을 향해 질주해 온 우리 사회가 놓친 것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소망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루어갈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추운 거리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보여준 질서있고 아름다운 집회문화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제는 차분히 각자의 자리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봄에 상영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 “세상이 이러한데 시가 쉽게 써진다는 거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어?”라는 동주의 고민에 몽규는 “넌 계속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들 거니까!”라고 대답했다. 동주와 몽규에게 독립운동의 방법은 다를 뿐 시대적 소명은 같은 것이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소명이 있을 뿐 아니라 각자의 소명도 있다. 2017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까? 각자 지금 그 자리에서 우리가 맡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해 내는 것, 지금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방구 아저씨는 불량식품을 팔지 않으며, 버스기사는 안전하게 운전해야 한다. 청와대를 향한 ‘촛불’은 바로 그러한, 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하고 그 자리를 제대로 지켜내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 생활 8년 동안 달라진 점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흰머리가 늘었다. 그러나 측근들은 내 기본적 인성에 변함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아내 미셸과 두 딸, 가까운 친구들이 내가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이다.” 일주일에 다섯번 딸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지키기 위해 6시30분이면 ‘칼퇴근’했다는 그에게서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성의 중요성과 따뜻한 인간적 매력을 느낀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만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중요한 건 우리가 권력을 위해, 명성을 위해, 재산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모든 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자리에 있다.”라고 했다. 대통령의 소명이 시민들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주는데 있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새삼 우리네 저녁식사 시간을 떠올려 본다.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지키려는 저녁식사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가족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하는지? 부모로서, 자녀로서 더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때문에 기본적인 인성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우리가 소망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모호한 정치적 또는 이념적 개념이 아닌, 시민들의 평범한 생활 속 일상들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삶의 현장,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임기 말까지 5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는 대통령, 그런 리더를 가진 시민들이 부럽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러한 결과를 만든 것은 시민들이다. 그들이 그런 대통령으로 뽑았고, 또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이 끝까지 그의 목표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올해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한 가장 실천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된 인물을 뽑는 것이다. ‘기본적 인성을 가진 리더’를 뽑을 수 있게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인물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보다 나의 한 표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결정한다는 국민으로서의 사명감을 잊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서 각자의 소명을 실천했으면 한다.

강혜경 경성대 가정학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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