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거닐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 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간 눈물 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 엄계옥 시인

제목부터가 참 재밌다. 기우라니, 기우의 사전적 의미는 쓸데없는 걱정. 옛날 중국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침식을 잊고 걱정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덧붙이자면 ‘그럴 일은 없다’로 읽으면 된다. 옛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한 사람이 오는 일은 십의 사백승 분의 일 확률이다. 그러니 한 번 가버린 것은 쉬이 돌아오기가 어렵다. 옛날이 그리움이 되는 까닭이다. 순애보가 느껴지는 시다. 그 사람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스스로 들어가서 갇히는 일이 사랑이다. 갇힌 순간 그곳은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된다. 제주 비자림 숲에는 물 외에는 반입이 금지된다. 화장실도 없다.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비자림 숲에서 웃다간 눈물 나던 사랑을 찾겠다는 것이 기우다. 이래저래 옛것은 그리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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