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판
‘잠룡’자처하는 시도지사들 도처에
큰 그림 좇느라 직분 망각해선 안돼
새해 들어 대한민국이 대선 정국으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정치판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과 동시에 촉발된 잠룡들의 대선행보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프레임 전쟁도 벌써 시작됐다. 문재인이 정권교체를 외치자 반기문은 정치교체를 카드로 내밀면서 맞받아치고 있다. 문재인의 사드배치 반대에 반기문은 사드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고, 문재인의 재벌해체에 반기문은 ‘따뜻한 경제’로 맞불을 놓았다. 마치 문-반 양강구도가 굳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두 사람이 이슈의 이니셔티브를 잡아 나가는 형국을 볼 때 앞으로의 대선 정국은 이들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초반전이라 예단은 금물이다. 정치판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반기문이 제3지대를 택할지 보수정당을 택할지 아직 미정인데다 문재인도 경쟁관계에 있는 민주당 후보들과의 본격적인 레이스를 펼치지 않은 상태다.
이 가운데 최근 각 지자체장들이 대통령 후보로 스스로 명함을 내밀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가장 조명받는 인물 중의 하나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 외에도 서울시장 박원순, 충남도지사 안희정, 경기도지사 남경필 등이 있다. 이들은 그나마 잠룡(潛龍)으로 분류돼 있지만 아직 잠룡에도 못 드는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그 대열에 끼어들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잠룡(潛龍)이란 <주역> 건괘에 나오는 말로 연못 깊숙이 잠복해 있는 용을 의미하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덕을 쌓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잠룡이 때를 기다리면 현룡(現龍)이 돼 땅 위로 올라와 자신을 드러내게 되고, 그 다음에 비룡(飛龍)이 돼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김기현 울산시장은 오래 전부터 대권 도전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으나 아직 자신의 구체적인 향후 행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새누리당의 정책위 의장까지 지낸 김 시장의 의중은 일단 외견상으로는 새누리당 탈당과 바른정당 입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김 시장은 새누리당의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어느 수준까지 당을 혁신시켜나갈 것인지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최종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시장의 행보는 울산시민들에게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울산시장이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울산시의 정책이 달라질 수 있고, 울산으로 오는 정부예산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울산시민들의 생활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한 점 때문에 김 시장이 결정을 미루면서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난 15일 대통령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이인제 새누리당 전 최고위원은 18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요즘 시·도지사들이 너무 많이 (대선 경연장에) 나와 어지럽다. 시정이나 도정을 이끌어가는데 더 열심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김기현 울산시장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김 시장은 우선 울산을 더 빛나는 도시로 건설하는데 매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산 출신의 정치인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울산시민으로서는 자못 기분 나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세태를 통틀어 이야기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의 말도 흘려들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현직 시도지사들은 모두가 시정과 도정을 잘 이끌어달라는 시민들과 도민들의 표을 받아 당선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도지사들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것도 좋지만 현 직분에 대한 성찰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역>에서 비룡(飛龍) 다음 단계가 항룡(亢龍)이다. 항룡은 하늘 끝까지 다다른 용으로 최고의 지위, 정치계로 말하자면 대통령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하여 항룡에게는 후회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사태처럼.
이재명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