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것들은
수직으로 잠이 든다

무엇이든 오래 되면 과묵이 업이고
침묵이 뒤꿈치 세우고 몸 꾸미는 아침마다
물안개 머리를 풀어내는 산이 부럽다

고사목은 죽어도 더불어 살고
살을 베어 내어 꽃대를 말아 내듯이
몸을 식혀 길 내는 법을 알아야
성긴 지문을 지우고 꽃이 된다

탑 쌓지 않아도 공덕 깨닫고
작은 것은 아래로만 피어 생이 가볍고
꽃의 반은 바람이 피우는데

붉어야 사람도 꽃이다

 
▲ 엄계옥 시인

제 안에서 오래 곰삭은 것에는 진한 향이 묻어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밖으로 내뿜기 보다는 안으로 침묵을 들일 때‘살을 베어 내어 꽃대를 말아 내듯이 몸을 식혀 길 내는 법’으로 해서 침잠은 향기가 되어 고인다. 그 시간은 지문이 새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픔은 견뎌야 물상 고유의 빛깔과 냄새가 된다. 나무는 나무의 향이 되고 꽃은 꽃의 향기가 된다. 각각 제 몸에 향기를 들이느라 한 생을 수직으로 서서 잠드는 일을 견딘 것이리라. 이 시는 고사목을 껴안고 있는 나무처럼 이타의 마음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면 향기가 아닌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상처에서 돋는 눈물, 꽃처럼 붉은 눈물을 흘려본 사람에게선 꽃냄새가 난다. 해서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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