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수년간 특이한 사건·사고가 보도될 때마다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이 등장하곤 한다. 작년에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조현병으로 치료받다가 중단한 것으로 밝혀졌고, 올해 초에 울산 북구에서는 조현병 환자를 제지하려던 경찰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이런 기사를 자주 접하다보니 조현병 환자들이 전보다 더 자주 증상이 악화되거나 재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혹시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조현병이라는 질환의 특성과 이 환자들의 치료 절차를 규정하는 정신보건법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최근에는 조현병이 발병하였거나 재발하였는데도 치료를 시작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보호자들이 부쩍 늘었다.

다음은 20대 환자 어머니의 하소연이다.

“아들이 5개월 전부터 이젠 다 나았다면서 자기 마음대로 약을 중단했어요. 두 달 전부터는 사람들이 감시한다면서 밖에 나가지 않으려 하고, 창문도 커튼으로 가리고, 자기 방에서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어요. 제가 약을 먹어라고 설득하면 버럭 화내고, 엄마도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과 모의했냐고 따져요. 첫 발병 때처럼 폭력을 쓸까봐 두려워서 저는 집 밖에 피신해서 지내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사회를 놀라게 한 특이한 사건으로
뭇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조현병
치료를 제대로 못받은 정신질환자가
자신과 주변, 사회안전 위협한 사례
병증 초기부터 적절한 치료 가능케
경직된 정신보건법의 개정 꼭 필요

정신병이 명백하게 재발하여 피해망상이 심하고 병식(자신의 질환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는 이 환자는 현행 법 체계에서는 안타깝게도 합법적으로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 가족들이 병원에 환자를 데려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응급 입원을 시키려면 정신보건법상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큰 자로서 상황이 급박한 경우’라야 한다. 사설 구급대를 이용하는 것도 불법이다.

병식이 없는 환자를 설득해서 병원에 데려온다면 다행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 여러 명이 무리하게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려다가 환자와 가족들이 다치기도 한다. 그러면 보호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결국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조언을 하고 있다. 환자의 망상이 심해져서 자해를 시도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보호자는 그제야 경찰에 연락한다. 치료시기를 놓쳤지만 이렇게라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칫하다가는 비극적인 사건·사고로 이어지곤 한다.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을 키우도록 조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 안전망도 흔들리고 있다.

작년에 개정되어 올해 5월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정신보건법은 더욱 심각하다. 개정된 법률에 의하면 위 사례의 환자를 보호자들이 어렵사리 병원에 데려와서 정신과 전문의가 진찰한 결과 ‘입원치료를 요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였더라도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 여기에 더해서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시킬 수 있도록 법령이 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법의 허점에 더 큰 구멍을 뚫어버린 셈이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가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의 특성을 고려하거나 의료의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치료 절차도 너무나 까다롭고 비현실적이다. 겹겹의 규제로 치료의 문턱을 높인다고 해서 인권이 보호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많은 환자들이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정신과 의사가 매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인권교육 시간에 한 참석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우울증이 심한 환자를 가족들이 응급실에 데려왔습니다. 면담 결과 자살 위험이 너무 높아서 당장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법적 요건인 보호자 두 명 중 한 명이 다른 도시에 있어서 당장 올 수 없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주말이라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미리 구비할 수 없었습니다. 곧 자살할 것 같은 위험한 환자를 돌려보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환자를 돌려보내더라도 병원의 책임을 묻지는 않습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지켜야 합니다.” 이 정도면 인권교육이 아니라 인권과 생명을 경시하는 법령을 강요하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 졸속으로 제정되더라도 정부는 철석같이 집행하게 되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정부는 개정된 정신보건법의 시행으로 문제가 더욱 불거지기 전에 이 법의 재개정을 시급히 검토하여야 한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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