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못 믿는 일도 있고 눈으로 보고도 못 믿는 일이 있어. 경주 남산에 있던 실제사의 영여 스님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 성씨가 뭔지도 몰라. 그렇지만 덕이 높고 행실이 발라 백성들의 우러름을 한 몸에 받았지.

신라 경덕왕 때였어. 왕이 영여 스님에게 공양을 드리려고 사람을 보냈지. 스님은 정중하게 거절했겠다. 덕 있는 스님을 잘 활용하는 경덕왕이 한번 먹은 맘을 그만둘 리가 없지. 기어이 스님을 모시고 온 게야. 대궐에서 재를 지낸 다음 스님이 돌아가려 하자 왕이 사람을 시켜 절까지 모시도록 했어. 스님을 태운 가마가 절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어. 눈 깜짝할 사이에 스님이 사라진 게야. 아무리 찾아봐도 그 자취를 모르겠거든. 왕은 기이하게 생각하고서 스님을 국사로 추봉했단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여 스님은 꼭꼭 숨어 버렸지. 스님이 머물던 절은 국사방(國師房)이 되었고.

승려란 절에 머물렀다 길 떠나며 수행하는 운수납자. 먹고살기 좋다고 주지가 되고 방장이 되는 자리에 매이면 그때부터 ‘진아(眞我)’는 없어지지. 궁궐에서 환대받은 수라상 밥값으로 요구되는 자리를 물리치려고 사라진 게 분명해.

영여 스님은 어디로 간 걸까. 절 앞에 있던 바위에 난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간 걸까. 몸을 솟구쳐 하늘로 간 걸까. 멀쩡한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질 리가 없잖아. 여기서 저기까지 일일이 주름을 잡어 훌쩍 건너가는 축지법을 쓴 것도 아닐 테고. 점잖게 왕의 청을 거절한 것이 소문나면 타격이 있으니 되레 신이한 이야기로 엮어 퍼뜨린 게지. 청을 거절한 영여사 때문에 왕의 위신이 떨어지는 걸 막으려고 ‘유령국사’로 모신 게지. 그래봤자 자신의 명성에 기대려는 왕의 의도를 백성들이 모를 리는 없을 터. 가마는 빈 채 돌아왔고 경덕왕의 의도는 결국 반쪽이 된 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돌아가는 것. 다음번에 있을 왕의 환대에 엮이지 않으려고 사라져 버린 영여사 만세!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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