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시산제(始山祭)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한 해 동안 산을 찾는 회원들의 무사를 비는 일종의 산신제(山神祭)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높은 산을 숭배해왔다. 새가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고 해서 솟대를 만들어 숭배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숭산사상(崇山思想)은 인간은 미천하고 산은 거룩하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높은 산만이 장한 산이라고 네가 말했을 때/깊은 산일수록 좋은 산이라고 내가 말했다/산이 높아야 사람이 오를만하다고 네가 말했을 때/산이 깊어야 사람이 들만하다고 내가 말했다/너는 젊어 올라가려고만 하고/나는 늙어 들려고만 한다… 등산과 입산(천양희)

조상들은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등산(登山)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입산(入山)이란 말을 썼다. 또 산에 갔다 와서 쓴 글을 등산기나 등반기라 하지 않고 근참기(覲參記)라 했다. 근참기란 ‘영험함과 경이로움을 삼가 절하고 뵙는다’라는 뜻으로, 대표적인 글이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다. 또 선인들은 산을 바라보는 관산(觀山), 산에 들어가 노니는 유산(遊山), 산을 즐기는 요산(樂山) 등의 단어를 썼다.

 

옛날부터 각 고을의 진산(鎭山)에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으나 산악회가 유교적인 격식을 빌어 시산제를 올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산행잡지 <사람과 산> 등에 따르면 1971년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이 2월 첫째 주에 명성산에서 ‘설제(雪第)’를 지낸 것에서 비롯됐다는게 통설이다. 이후 1980년대 들어 안내산행이 유행하면서 이 설제가 시산제로 이름을 달리해 전국으로 퍼졌다. 이전에는 설을 쇤 뒤에 시산제를 지냈으나 요즘에는 양력 1월 중에 지내는 경우도 많다. 시산제로 말미암아 울산의 산들이 가히 신령스런 기운을 내뿜는 계절이다.

이재명 경상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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