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계획만 있고 방치된 객사·언양읍성
문화재의 현상보존과 활용 동시 추구로
이용가능한 온고지신 가치 찾아냈으면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문화재는 ‘갑’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고 다시는 만들 수도 없는 문화재는 ‘갑’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 그 때문에 ‘엄격한 보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엄연한 ‘갑’이라도 ‘갑질’을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흔적만 남은 문화재가 문화재청으로부터 ‘복원’이라는 감투를 받아쓰게 되면 그 ‘갑질’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울산에는 시가지 한가운데 ‘복원’이 예고된 2기의 문화재가 있다. 그 하나는 울산시의 중심인 중구 원도심에 자리한 객사(옛 울산초등학교)다. 다른 하나는 울산의 부도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언양읍의 한가운데 자리한 언양읍성(사적 153호)이다. 둘 다 조선시대 중요한 관공서로 지금은 흔적만 일부 남아 있다. 유감스럽게도 수년~수십년째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만5914㎡나 되는 객사터는 가림막(펜스)으로 막아 놓았다. ‘객사 복원’이라는 막연한 계획만 세워져 있다. 시립미술관 부지로 지정됐던 객사터는 유적이 발굴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시립미술관은 그 옆 북정공원·중부도서관 부지에 짓고, 이 일대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객사를 복원하겠다는 것이 울산시의 계획이다. 이론적으론 근사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제쯤 가능할지 알 수가 없다. 가림막만 보면서 앞으로 수년을 더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객사 복원이 필요한가이다. 복원한 객사에서 문화재적 전통 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오히려 주춧돌 등의 유구를 있는 그대로 노출하면서 부지를 개방, 공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문화재 보존의 목적에도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훼손이 걱정되면 공공근로를 활용해 관리를 하면 될 일이다. 조금 더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유구를 훼손하지 않고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을 짓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온고(溫故)를 통해 지신(知新)을 이루어야 한다.

4만1349㎡나 되는 언양읍성 안은 미나리꽝과 스러져가는 집, 폐교가 된 초등학교 건물이 무질서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부 성곽은 복원됐으나 보상비를 고려하면 복원완료까지는 기약이 없다. 언양읍성은 사적으로 지정된지 51년이다. 수십년째 찔끔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겨우 남문루를 중심으로 복원작업이 진행돼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그런데 언양초등학교 보상과 철거, 성내 토지 보상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화재청은 성곽유적에 대해 ‘복원과 정비사업 지양’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언양읍성의 복원도 ‘일단 정지’가 뻔하다. KTX역세권 개발로 부도심으로 급성장이 예고돼 있는 언양의 중심이 미나리꽝이라니. 성곽 복원이 아니라 성곽 내 사유지 보상을 먼저 완료한 다음 공원 등으로 활용한다면 언양주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지겠는가. 관광자원로서의 가치와 접근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행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접근금지’다. 대부분의 문화재는 들어가서도 만져서도 안 된다. 문화재청이 보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또한 문화재를 보호할 능력이 지자체에는 전혀 없다고 보고 있는 것도 같다. 지자체도 어느새 습관이 돼버린 건지, 인력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건지, 문화재청의 지시만 답습할 뿐이다. 문화재의 중요성을 폄하하거나 보존을 소홀히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화재의 ‘현상보존’과 ‘활용’의 양립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를 통해 온고지신의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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