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자 본보를 통해 공개된 겸재 정선(또는 그의 손자 정황)의 그림 ‘언양 반구대’는 볼 수록 흥미롭다. 기묘한 형상의 산과 바위, 휘돌아 흐르는 계곡, 배산 임수의 절묘한 곳에 자리한 집 등 울주 대곡천 일대의 풍광이 얼마나 절경이었을까 싶다. 지금은 사람의 발걸음이 잦지 않은 심산 유곡인데 겸재가 살던 그 시절엔 꽤나 ‘번화가’였던 모양이다.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을 정도로 높은 바위 위에서 절경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의 태연한 모습을 보면 그다지 새삼스런 일도 아닌 듯해서 하는 말이다.

이 그림은 우리 역사의 한 단락을 새롭게 조명할만한 근거도 되고 있다. ‘반구서원이 원효대사가 머물며 저술활동을 했던 반고사터에 건립됐다’는 논문(울산지역문화연구 ‘조선시대 언양 반구서원에 대한 일고찰’)을 발표했던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장은 “그림 속 ‘여러 채의 가옥’이 바로 ‘반구서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구대 절벽 아래 반고사터가 있었고 나중에 반구서원으로 바뀌었으며 그림 속 집들이 바로 그 곳일 거라는 추정이다. 그림 속 건축물의 숫자와 배치도를 가늠할 때 조선시대 서원의 구조와 비슷하다는 것은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신관장은 “반구정으로도 불렸던 집청정 옆에 있는 건물이 반구암일 가능성도 있다”는 추론도 내놓았다.

이는 대곡천(大谷川)이 품고 있는 새로운 역사 자원임에 틀림없다. 대곡천은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의 탑골샘에서 발원하여 미호저수지를 거쳐 남류하다가 연화천, 구량천이 차례로 합류되고 반구대를 지나 반곡천이 합류되고 사연호를 거쳐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태화강의 본류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과 반구대 암각화(285호), 공룡발자국화석 등과 더불어 대곡천의 역사자원이 한층 풍성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경관이 빼어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주 출신 유의건의 <반구암기>, 울산부사 권상일의 <청대일기>, 이만부의 <반구기> 등에서 이미 이 일대의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거기에 이번 ‘언양 반구대’ 그림으로 현장성이 확보된 것이다.

역사자원이 관광자원이 되려면 현장성이 매우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지점에 역사적 근거가 제시되면 그 가치는 한층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반구서원과 반구암, 반구대 등의 위치를 확인하는 등 암각화로만 알려져 있는 반구대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반구대 암각화’라는 이름이 오히려 무궁무진한 역사적 사연을 담고 있는 대곡천의 가치를 축소시키고 있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현장을 재조명해서 대곡천을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한단계 진일보시켜야 한다. 울산시의 관심과 지역 향토사가들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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