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신라문물연구’서 주장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보물 제1411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나오는 문구 중 일부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이 비석의 글자 74개에는 화랑으로 추정되는 젊은이 두 명의 맹세 내용이 담겼다.

한자를 중국어가 아닌 우리말 어순에 따라 적은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임신서기석에 기록된 ‘임신년’을 두고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해 552년설, 612년설, 732년설이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 박물관이 24일 발간한 <신라문물연구> 9집의 논고를 통해 552년설을 지지했다.

이 학예연구사가 552년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문체다.

그는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天前誓今自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는 문장에서 ‘맹서할 서’(誓) 자가 앞쪽과 뒤쪽에 두 번 나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보통의 중국 문장이라면 동사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두 번째 서(誓)는 불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문체는 신라에서 6세기 초중반에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503년 만들어진 포항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에도 한 문장에서 가르칠 교(敎) 자가 두 번 나오고,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561년 목간에도 아뢸 백(白)이 중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591년 유물인 남산신성비와 804년 제작된 선림원종에는 한 문장에서 서(誓) 자가 한 번만 사용됐다.

이 학예연구사는 “서술어 반복 문체가 쓰이는 시기를 보면 임신서기석의 임신년은 다수설인 612년이 아니라 552년이 확실하다”며 “이로써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가 6세기부터 사용됐음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신라문물연구>에는 임신서기석 논고 외에도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동용봉무늬 그릇에 도교적 내세관이 투영돼 있다는 주장을 담은 논고,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인 양무당의 건립 시기가 1680년임을 밝힌 논고 등이 게재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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