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영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전 울산변호사회 회장

대법원은 올해 3월부터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 거창한 이름의 제도는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 후 구속이 되고,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경우 수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영장실질 심사시 선정된 국선 변호사가 계속 변호를 맡는 방식이다.

울산의 경우 올해 1월26일까지 국선변호사 선발 절차를 진행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는 사선변호사, 국선전담변호사, 선정 국선변호사 제도 외에 추가로 구성되는 것이고, 울산의 경우 2년 임기로 8명 정도(울산 변호사회의 건의에 따라 1년 임기로 16명 정도)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법부에 예속된 제2의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 본질이다. 따라서 형사재판을 위해 사법부에 예속된 국선변호사의 숫자를 더 늘려서 재판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구속된 피의자, 피고인의 실질적인 방어권을 보장해 인권보장에 만전을 기하고 사건을 잘 파악하고 있는 국선변호사가 계속 변론하므로 변론의 일관성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참으로 바람직한 제도로 보인다. 언론도 사법부의 제도시행 취지를 선의로 해석해 이구동성으로 긍정적으로만 보도하고 있다.

형사재판은 검사, 피고인을 대리하는 변호사, 판사가 기본 구성원이다. 검사는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주고자 하고, 피고인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무죄를 주장하거나 혹은 처벌의 강도를 덜어 보려고 다투고,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과 법조항을 균형 있게 적용해 죄의 유무, 형의 정도를 심판한다. 그러나 새로 도입하고자 하는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제도’는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할 판사가 피고인 편을 들어 변호해야 할 변호사를 자기 손으로 지명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할 사법부가 한 쪽 팀의 선수를 기용하는 꼴로 법리적으로 모순이다.

지난 2년에 걸쳐 부산고등법원에서 실시한 국선전담 변호사 선발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보니 10대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치열하다. 선발되기도 어렵지만 연임에 신경쓰다보니 선발된 변호사가 판사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극히 일부의 일이긴 하나 무죄주장을 주저하게 만들고 증거신청을 자제하도록 무형의 압력을 행사하는 폐단이 있다. 변호의 독자성을 부지불식중에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재판은 내용면에서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공정해야 한다.

사법부가 그들의 입맛에 맞게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사를 선발, 관리하면서 변호사를 사법부에 종속시키겠다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또한, 형사재판 변호절차를 형식적으로 만들고, 공정한 변호인 선임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법조는 판사, 검사, 변호사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대등한 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피고인의 실질적인 방어권을 확보할 수 있고 인권보장도 가능하다. 바퀴축이 하나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수레가 제대로 굴러 가겠는가?

이번 제도의 시행에 앞서 대법원은 지방변호사회는 물론 대한변호사협회에도 의견을 구한 바 없이 독단적이고 기습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양대 협회의 집행부가 바뀌는 리더십 부재의 틈을 노리고 펼치는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다. 사법부의 독단, 인권보장 의식의 결여를 크게 우려한다. 실질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사법부는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제도’라는 제도 시행을 즉각 중단해야 옳다. 이보다는 현행 국선 변호제도를 구속사건 논스톱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면 간단하다. 국선전담변호사 몇 명을 법원이 자의적으로 뽑지 말고, 현행 국선 변호사 인력풀에서 순번대로 사건을 맡겨 논스톱 방식으로 변호하게 하면 된다. 사법부에서 제시하는 월 여덟 건보다 훨씬 적은 일인당 한 건 정도를 맡게 되면 변호의 일관성, 독자성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구속된 피의자나 피고인의 실질적 방어권 보장에도 더 충실할 수 있다.

법원에서 제도 시행을 강행한다면 강력하고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변호사들도 사선도 할 수 있고, 비용도 더 주고, 사건도 주겠다는 그야말로 일석삼조라는 사법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본질을 직시하고 경계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서기영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전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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