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중문화계 된서리 이어 뮤지컬·클래식 등 줄 취소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과 관련한 중국의 ‘보복’성 한한령(限韓令)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방법도 연주자나 배우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 해당 공연에 대한 단체 관람 불허 등으로 다양하다.

한 뮤지컬 기획사 관계자는 25일 “’한·중 관계 악화‘라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은 채 ’서류에 점을 하나 안 찍었다‘는 식의 꼬투리로 비자 발급이나 공연을 취소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소프라노 조수미와 피아니스트 백건우마저 중국 공연을 코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받았고 여기에 중국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돼 공연계의 우려가 크다.

실제로 2월 19일부터 진행할 공연을 취소당한 소프라노 조수미의 소속사에 따르면 조수미와 협연하기로 한 광저우(廣州) 심포니, 베이징(北京) 차이나 필하모닉, 상하이(上海) 심포니오케스트라는 지난 22일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공연 취소를 알려왔다.

공연 날짜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비자 발급에 필요한 오케스트라의 초청장도 오지 않아 비자 발급이 계속 미뤄져 왔던 것을 보면 중국 당국의 의지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조수미는 24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그들의 초청으로 2년 전부터 준비한 공연인데 이유도 모른 채 취소됐다. 국가 간 갈등이 순수 문화예술까지 개입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이 크다”고 밝혔다.

앞서 백건우가 오는 3월18일 중국 구이양(貴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가지려던 협연도 뚜렷한 이유 없이 취소됐고, 역시 중국 당국이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건우 측 관계자는 “오케스트라 측에서 인쇄물까지 다 준비했으나 비자 발급에 필요한 도장을 중국 정부에서 안 찍어줬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공연의 성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당분간은 중국과의 교류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중국 공연 시장이 막 싹을 틔우는 시기에 공연 외적인 문제로 그동안 어렵게 다져놓은 교류 토양이 초토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도 이번 사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베이징발로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이 사드 배치로 인한 새로운 피해자들이 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영국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도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백건우의 비자 발급 거부를 언급하며 “공연 취소는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클래식 공연에 앞서 뮤지컬 공연은 지난해부터 잇단 취소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대표격인 ‘빨래’는 지난해 8월 현지 기획사 측이 ‘한류와 관련해 홍보 및 마케팅이 쉽지 않다’는 제안을 받고 투어 일부를 중단한 바 있다.

‘빨래’ 제작사인 씨에이치 수박은 올해 공연을 위해 중국어와 중국 배우들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버전을 준비 중이다.

씨에이치 수박 관계자는 “극장 계약까지 마치는 등 아직은 문제가 없다”며 “다만 워낙 불확실성이 큰 터라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연 직전 당국에서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 몰라 현지 기획사 측도 불안해하는 분위기”라며 “우리뿐 아니라 업계에서 공연하러 중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쏙 들어갔다”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리틀잭’의 제작사 HJ컬쳐도 올해 한국 배우들로 구성된 오리지널팀의 중국 공연을 예정했으나 이를 취소하고 중국어 라이선스 버전만 올리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중국어 라이선스 버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당국의 사전 검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문화 분야도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 연예인의 중국 활동을 제한 또는 금지하는 한한령 또는 금한령(禁韓令)에 대한 소문이 이어졌다.

중국 매체들은 지난해 9월 이후 42명의 한류스타와 53개의 한중 합작드라마가 금한령의 영향을 받아 위성 방송 등에 방영 또는 출연이 금지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연말께는 실제로 한국 연예인의 중국 방송, 광고, 영화 출연도 사실상 전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측이 ‘부산행’ 등 한국 영화 여러편의 판권을 사들였지만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는 한편도 없어 해마다 3~4편이 중국에서 개봉되던 것과는 대조됐다.

일부 한·중 합작영화 계획도 무산됐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중국 상무부와 지난 13일 베이징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면서 산업계와 문화예술계의 ‘사드 보복’에 대한 우려를 전했지만, 중국 측은 차별적인 조치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대책을 협의 중”이라며 “우선 상반기 있을 한중 문화산업포럼이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등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중국측의 노골적인 한한령 규제에 대한 우리 정부와 업계의 항의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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