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이상 ‘깨알지시’ 하기도…‘최순실 아이디어’ 포함 의혹

최순실(61)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푸는 핵심 증거가 된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에 기록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는 대부분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받아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수첩에 바삐 써내려가는 동안,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생각나는대로 말하기보다는 어딘가에 기록된 것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조사를 받으며 재직 시절 업무 수첩에 박 대통령의 지시를 어떻게 기록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은 2015년 1월부터 작년 10월까지 작성된 것으로, 모두 17권이며 500쪽을 넘는다. 검찰은 작년 10∼11월 안 전 수석의 주거지와 청와대 압수수색으로 이들 수첩을 확보했다.

안 전 수석은 수첩의 첫 장부터는 수석비서관회의 등 일상적인 회의 내용을 기록했고 마지막 장부터는 박 대통령을 뜻하는 ‘VIP’라는 제목 아래 박 대통령의 지시를 빼곡히 썼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안 전 수석은 업무 수첩에 적힌 박 대통령의 지시 대부분이 직접 만나 기록한 게 아니라 박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받아적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업무 수첩에 기록된 것은 모두 박 대통령의 지시로, 자신이 덧붙인 것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수첩에 적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전화로 1시간 이상 ‘깨알 지시’를 한 적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도중 “받아적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지시를 충실히 기록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지시할 것을 미리 수첩 같은 곳에 적어뒀다가 자신에게 불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검찰에 털어놨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이 최씨의 말을 받아적었다가 안 전 수석에게 그대로 읽어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씨 측근으로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했던 차은택(48)씨는 23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최씨에게 만들어준 문장을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읽는 것을 봤다고 증언한 바 있다.

차씨는 최씨가 특정 휴대전화로 박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자주 통화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청와대 수석비서관인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 기록의 상당 부분이 국정운영의 경륜 없는 최씨와 주변 인물들이 즉흥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의 모음일 수 있다는 의혹을 낳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