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호 극작가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장자가 말했지. 새가 쪼아 먹어 하늘로 사라지나 벌레가 먹어 땅속으로 흩어지나 죽는 건 마찬가지니 가장 자연스러운 장례를 해 다오. 며칠 뒤 장자의 시신은 초원 위에 뉘였고 그의 유언대로 새가 날아오고 벌레들이 기어 나와 장자의 시신을 파먹었지.

신라 경덕왕 때엔 신이한 죽음 이야기가 있어. 삽량주(양산) 동북쪽에 있는 포천산(천성산)의 석굴은 사람이 파서 만든 것같이 이뻤대.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던 굴속에는 다섯 비구가 수십 년 간 수행을 하고 있었지. 하루는 서쪽에서 성스러운 이들이 와서 비구들을 각각 연화좌에 앉혔어.

비구들은 앉은 채 허공으로 떠 가다가 통도사 문밖에 이르러 육신을 벗어버린 게야. 하늘에선 풍악 소리가 울렸지. 그 절의 스님이 보니 다섯 비구들이 무상(無常), 고(苦), 공(空)의 이치를 밝히고는 큰 빛을 내비치면서 서쪽으로 날아가거든. 육신을 버린 곳엔 유해가 떨어져 있었지. 거기다가 스님들이 정자를 짓고 치루(置樓·유해를 빻아 둔 곳)라는 이름을 붙여줬어. 지금의 천성산 미타암에 있는 굴법당이 다섯 비구가 목숨 바친 수행 끝에 부처가 된 곳이야.

우리 일상인의 삶은 어떤가? 숨이 붙어 있기에 그저 살아가는 걸까. 자고 깨어 먹고 일하다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걸까. 삶은 다만 꿈인 걸까. 살아생전 끊임없이 갈등하고 다투다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땅속에 묻히는 걸까. 다섯 비구에겐 아미타불의 전령이 극락으로 인도했는데 우리도 정진하면 극락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걸까. 임종 직전에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무슨 메시지를 받게 되는 걸까. 숨을 몰아쉬다가 마지막 날숨을 뱉어놓고 저세상으로 건너가는 걸까.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자연의 일부라면 자살을 하거나 제 의지로 죽음으로 뛰어드는 이들의 행위는 무엇일까. 삶은 그만큼 헛된 것일까. 거저 얻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망상일 뿐인가. 아는 이들의 장례식이 나흘에 세 번이나 있어서일까 느슨하던 일상에 쨍, 금이 가는 요 며칠이야.

장창호 극작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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