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행정명령 철회에도 시위대 규모 더 커져…“50만명 모여 퇴진 요구”

부패사범을 사면하려다가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에 직면한 루마니아정부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루마니아정부는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부패 사범 사면 등을 골자로 한 긴급 행정명령을 폐지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소린 그린데아누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루마니아를 분열시키고 싶지 않다”며 사면 행정명령 철회를 약속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민중의 힘이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는 그린데아누 총리의 사회민주당(PSD) 연정이 지난달 31일 징역 5년 이내의 기결수와 직권남용에 따른 국고 손실액이 20만 레이(약 5500만 원) 미만인 부패 사범을 대거 사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추진하며 시작됐다.

정부는 ‘교도소 과밀’을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현 정부 실세로 통하는 리비우 드라그네아 PSD 대표를 비롯한 부패공직자들을 사면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다.

지난달 31일 행정명령 확정 발표 직후부터 닷새 연속 벌어진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했으며 수십만 명이 운집했다.

차우셰스쿠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1989년 혁명 이후 28년 만에 최대 규모라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PSD 연정이 국민적 반발에 굴복해 결국 행정명령을 철회했지만 이날 시위대 규모는 더 커졌다.

루마니아 언론은 전국에서 50만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날도 수도 부쿠레슈티 정부 청사 앞 광장에는 수만 명이 모여 루마니아 국기를 흔들며 ‘사임하라!’, ‘도둑들!’ 등의 구호를 외쳤다.

PSD 연정은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그린데아누 총리는 현지 안테나3 방송에 “정부는 총선에서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밝혀, 퇴진을 거부했다.

그는 또 “의회만 나를 물러나게 할 수 있는데, 연정이 과반을 점유하고 있다”고 말해 총리직에서도 사임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FT는 백지화가 결정된 루마니아 정부의 이번 행정명령이 “루마니아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최근 고무적인 진전을 보인 고질적인 부패와의 싸움에 대한 배신”이라고 지적했다.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루마니아는 부패 척결, 사법부 독립 등 개혁에서 2004년 EU에 먼저 합류한 다른 8개 옛 공산국가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이에 EU는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특별 감시 조치가 이뤄지도록 했고, 루마니아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집중 수사하는 반부패청(DNA) 등을 통해 반(反)부패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2015년 당시 PSD 정부는 빅토르 폰타 전 총리 등 고위 공직자의 잇따른 부패 스캔들에 시달리다 그해 11월 결국 퇴진했다.

과도정부를 거쳐 작년말 치러진 총선에서 PSD는 45.48%를 얻어 이겼지만, 고질적인 정치 불신과 무관심, 낮은 투표율도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루마니아 총선의 투표율은 39.5%에 그쳤다.

PSD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부패사범을 대거 사면하는 조처에 나서 위기를 자초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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