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호 염포초등학교 교사

“귀에 착 감기는 것이 글의 내용이 정말 좋구나. 저 집에 가서 지금 읊고 있는 글이 무엇인지 한 번 물어 보거라.”

“나으리, 지금 저를 놀리시는 것입니까? 정말 이 글을 모르시겠습니까? 이 글은 나으리께서 수도 없이 읽으셔서 저도 다 외우겠습니다요.”

하인이 답답할 만도 할 것이 이 날 문 밖으로 들리던 글은 김득신이 수만 번을 읽었던 <백이전>의 한 구절이었던 것이다.

17세기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문학가인 백곡(栢谷) 김득신의 생애는 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인지발달이 되지 못해 노력에 비해 너무나도 아둔하였다. 하지만 김득신은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의 버팀목은 언제나 그를 격려하고 신뢰한 아버지 김치(金緻)였다.

김득신의 둔함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김치에게 새로 양자를 들이던지 아들에게 글공부를 그만두게 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김치는 그 때마다 “학문의 목적은 과거 급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저 아이가 그래도 저렇게 하고자 하는 것만 해도 대견하지 않은가?”하고 반문했다. 그런 아버지의 믿음덕분이었을까? 똑똑한 문인들은 훨씬 많았으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김득신이었다.

많은 대기만성형 인물 뒤에는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그 사람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라면 아이는 더 없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노력과 열정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있다 보면 나조차도 늘 재촉과 비교를 입에 달고 살게 된다. “빨리 책 펴라.” “얼른 밥 먹어야지.” “다른 애들은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러니?” “너 빼고 다 했어.”

식물이 정성껏 물을 주고 애정을 쏟는 만큼 자라듯 아이도 믿는 만큼 성장한다. 내 자녀가, 내 학급의 아이가 조금 느리거나 못하다고 함부로 비교하고 판단해 생채기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춥고 긴 겨울 속에서 꽃봉오리를 맺기 위해 쉼 없이 열기를 내뿜듯 아이도 하루하루 성장한다. 그 성장은 어른의 조급한 결과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2월은 입학과 새 학년을 준비하는 시기다. 우리 아이가 잘 할 수 있을까, 혼자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부모로서 고민과 조바심을 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봄이 와야 꽃은 핀다. 겨울인 아이를 재촉한다고 하여 꽃을 빨리 피울 순 없다. 걱정과 조바심보다는 더 큰 격려와 믿음을 가져볼 때이다. 남보다 더딘 아이, 남보다 부족해 보이는 아이는 남들보다 더 큰 꽃을 피우기 위해 더 큰 겨울나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기에.

그래서일까. 김득신은 묘비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고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씀에 달렸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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