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헌산(상)

울주군 고헌산 왼쪽 계곡 ‘대통골’따라
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원점산행 코스
영남알프스 3대 계곡트래킹지로 유명
크고 작은 폭포가 12개…험하기로 이름나

계곡의 물소리 벗삼아 걷다보면
고헌산 서봉·정상의 능선길에 도착
낙동정맥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지고
남서쪽 7부능선 아래엔 전설의 우레들이 자리

울산시 울주군 고헌산(1034m)은 낙동정맥의 한 구간으로 언양의 진산(鎭山)이다. 동국여지승람 언양현 산천조(山川條)에는 ‘고헌산은 고을 북쪽 10리에 있는 산’(高獻山在縣 北十里鎭山)이라고 돼 있다. 이 산은 ‘고디기’란 별칭으로 불린다. 고헌산 서봉이나 배내고개에서 바라볼 때 이 산은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와우산(臥牛山)이라고도 불린다.

▲ 고헌산 대통골은 험상궂은 폭포를 비롯해 직벽에 가까운 폭포, 쌍폭포, 이끼폭포, 실폭 등 크고 작은 폭포가 12개나 된다. 사진은 대통골 폭포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폭포.

경주 산내 사람들은 고함산이고도 한다. 산의 동쪽으로는 홈도골, 연구골이 구량천으로 흘러 태화강(太和江)의 지류를 이루고 북쪽 기슭에서 발원한 큰골, 도장골은 밀양강(密陽江)의 상류인 동창천(東倉川)의 발원지가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곰지골, 대통골, 삽재골 등 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다.

고헌산은 언양에서 석남사방향 24번 국도를 따라 석남사로 가다보면 궁근정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훤히 올려다 보일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산이다. 고헌산을 남쪽 사면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중앙능선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계곡이 길게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계곡을 곰지골이라 부르고, 왼쪽 계곡을 대통골이라 부른다. 곰지골은 이 골짜기에 곰이 자주 나타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너덜과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왼쪽 대통골은 대나무의 홈통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통골은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어 사시사철 수량(水量)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여름철 영남알프스의 3대 계곡트래킹(물길 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고헌산 대통골은 험상궂은 폭포를 비롯해 직벽에 가까운 폭포, 쌍폭포, 이끼폭포, 실폭 등 크고 작은 폭포가 12개나 된다. 사진은 대통골 폭포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폭포.

이번 산행기에서는 가까우면서도 사람들의 발길을 쉽게 허용하지 않은 대통골을 따라 고헌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원점산행 코스를 소개한다.

우선 산 아래 신기마을에 도착하면 오른쪽으로 여러 개의 안내 이정표가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진우훼밀리 아파트와 삼진아파트를 지난다.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10여분 쯤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아담한 공중화장실, 서너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 산행 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곳에 도착한다. 이 곳이 바로 고헌산 원점산행의 베이스캠프(base camp) 역할을 하는 지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산행시 들머리(초입)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지만 대통골 산행 시에는 물을 보충할 필요가 없다. 산 8부 능선까지 물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 곳에서 물을 보충해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뒤 고헌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고헌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오르다보면 대통골의 초입(들머리)에 놓여진 강산교가 보인다. 등산로는 계곡 왼쪽 축대 위로 길이 나 있다.

마치 대나무 통 속 같은 계곡을 따라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절기상 대한을 지나 건기(乾氣)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이 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우레들(巖田)과 용샘(龍泉)의 전설이 떠오른다. 그 신비스러운 비밀을 하나하나 벗겨가며 계곡산행 겸 물길산행을 번갈아가며 대통골 더 깊은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의 언저리를 벗어나 물길을 따라 오르다 첫 번째 와폭(臥瀑)을 지나면 높이가 5m가량 되는 아담한 폭포를 만난다. 삼면이 깊게 파여 있고 마치 대나무의 홈통을 닮았다. 여름철이면 물길산행(일명 계곡치기)을 이어가지만 우회하여 왼쪽 길을 따라 오른다. 길 옆에는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오래된 듯한 숯가마가 있다. 수십 년 세월이 지낸 것처럼 보이지만 원형이 보존돼 있어 눈길을 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방문에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줄행랑을 놓으며 쏜살같이 능선 쪽으로 사라진다. 양지바른 바위틈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다람쥐며 청설모 모습도 목격된다.

숯가마를 지나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조금 더 위로 오르다 보면 3단 형태의 폭포가 또 나타난다. 연거푸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떨어지며 작은 소(昭)와 담(潭)을 만들어낸다. 돌부리를 스치며 서로를 위로하듯 엄동설한을 견디어 가고 있는 듯하다.

2~3개의 폭포를 지나면 이번에는 계곡협곡사이에 있는 또 다른 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대통골 폭포 중 계곡 등반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곳이다. 몇 해 전에는 이곳에서 인명사고가 나기도 했다. 5m 정도의 높이에 거의 수직에 가까운 폭포수가 떨어진다. 자일을 이용하여도 오르기 힘들 뿐 아니라 마땅히 발붙일 곳이 없어 전문 산악인도 이 곳을 통과하려면 애를 먹는다. 이렇듯 대통골은 험상궂은 폭포를 비롯해 직벽에 가까운 폭포, 쌍폭포, 이끼폭포, 실폭 등 크고 작은 폭포가 12개나 된다. 여름철 계곡트래킹을 겸한 물길산행코스로 인기가 높지만 영남알프스 주변의 그 어느 계곡보다 험한 곳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계곡을 타고 물길을 오르기를 1시간 여. 계곡의 수량(水量)은 다소 줄어들지만 협곡은 깊이를 더해간다. 계곡이 물길을 다해 갈 즈음 폭포를 우회해 왼쪽의 비탈길을 다시 오른다. 이때부터 가파른 너덜길이 기다리고 있다. 고헌산을 오르는 등산로 중 가장 위험한 험로로 알려진 곳이다.
 

 

산행을 하면서 산 8부 능선까지,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오르는 산길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자신이 살아있음에 대한 행복감과 인생의 즐거움 앞으로 산행을 통한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심을 키우기도 한다.

몇 개의 너덜지역을 지나 안부에 도착하면 조금 뒤 사방이 확 트이는 고헌산 서봉과 정상의 능선길 중간 기착지점에 도착한다. 이때부터는 영남알프스의 북쪽 사면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낙동정맥의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지고 발 아래에는 대통골과 북쪽 방면의 백운산까지 조망된다. 정상에 가기 전에 서봉쪽으로 먼저 발길을 돌린다. 서봉(1035m)은 정상보다 1m 가량 높게 표기된 정상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고, 표지석을 기준으로 경남·경북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서쪽 저 멀리에는 문복산 드린바위가 운무 속에 아련하다. 그 옆으로는 대부산(조래봉)이 자라등처럼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 남·서쪽 7부능선 아래에는 전설의 고헌산 우레들이 자리잡고 있다. 고헌산 산행시 시간이 허락하면 꼭 한번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진희영 산악인·중앙농협 달동지점장

 

◇고헌산 북쪽 산기슭, 우레들

고헌산 북쪽 산기슭 중앙에는 ‘우레들’이라 부르는 돌들긍(巖田)이 있다.

‘돌들긍’이란 큰 바위덩어리가 오랜 세월 풍화 작용을 거치면서 깨어져 산의 계곡을 덮고 그 밑으로 물이 흐르는 돌밭을 말한다.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삽재마을 광바위를 옆으로 휘돌아 경주 산내로 넘어가는 외황재에 오르면 바로 앞산 고헌산 중턱에 우레들이 보인다. 학교운동장 두·서너 배 크기의 돌들긍이 가운데 능선을 두고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측의 것이 더 넓고 크다.

이 돌들긍 밑으로는 사철 물이 흘러 ‘우르릉 킁킁’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천둥(우레)소리와 비슷해 예로부터 ‘우레들’이라 했다한다.

산세가 몹시 가파르고 험할 뿐만 아니라 다른 돌들긍 보다 큰 돌들이 얼키설키 불규칙적으로 쌓여져 있고, 어느 돌 하나라도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 산짐승마저도 피해간다고 한다. 사람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사지(死地)이다.

지금은 주변의 수목들이 점점 자라면서 그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전설에 의하면 이 우레들 가운데는 큰 돌샘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 산칼치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른 서너 발 쯤 되는 긴 산칼치는 원래 바다에 사는데, 가끔 육지에 올라올 때는 시퍼런 빛을 내며 이 곳에 들어와 살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고 한다.

산칼치가 이 곳을 떠나면 이 지역에 가뭄이 들고 한해 농사는 망치기 십상이었다고 한다. 산에 나무하러 간 머슴이나 소 먹이러 간 아이들, 봄철에 나물 캐러 간 아낙들이 잘 모르고 이 곳에 접근하면 마을 노인네들이 못 들어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다고 한다. 우레들 돌샘에 살고 있는 산칼치가 놀라서 바다로 도망 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레들 전설은 동쪽(두서면 차리 방향) 정상(고헌산 동봉)아래 있는 용샘과 함께 고헌산의 신비로운 2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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