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A형 백신 접종 없었고, 백신 추가 확보도 쉽지 않아
구제역 걸린 돼지 바이러스 배출량 소의 1천배…전염성 커

사상 처음으로 ‘O형’과 ‘A형’, 완전히 다른 두 개 유형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동시 발생하면서 전국 1천만 마리 규모의 돼지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돼지의 경우 A형 바이러스 백신을 전혀 접종하지 않아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만큼, 일단 감염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 돼지는 ‘O형’ 구제역 백신만 접종

12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구제역은 A, O, C, Asia1, SAT1, SAT2, SAT3형 등 총 7가지 혈청형으로 유형이 구분된다.

각각의 혈청형은 유전자 특성에 따라 최대 80여 가지의 하위 유형(아형)으로 나뉜다.

구제역은 기본적으로 혈청형 간에 교차 방어가 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어떤 하위 유형인지에 따라 백신 효과에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크게는 혈청형별로, 작게는 유전자 특성에 따라 각각의 하위 유형 방어에 적합한 백신을 맞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백신을 제조하는 나라가 영국, 중국,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소수 국가로 한정돼 있어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백신 종류를 추가할 때마다 비용도 그만큼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최악의 ‘구제역 파동’이 난 이후 구제역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다.

농림축산식품부 가축방역심의회는 2016년 1월 상시 백신으로 소 농장에서는 영국 메리알사(社)의 2가 백신(두 가지 유형 바이러스 방어 백신·O+A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2가 백신은 ‘O1 마니사’(O1 Manisa), ‘O 삼공삼구’(O 3039) 등 두 가지 균주를 섞어 만든 O형 전용 백신 균주와, A형 전용인 ‘A22 이라크’(A22 Iraq)라는 백신 균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비해 돼지의 경우 ‘O1 Manisa’, ‘O 3039’를 섞은 O형 전용 단가 백신이 상시 백신으로 선정돼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3가 백신(O+A+Asia1형)을 상시 백신으로 사용했다가 바뀐 것이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국내 돼지에서는 A형이 발생한 사례가 없었고, 전부 0형 발생 사례만 있었던 점이 영향을 줬다”며 “소보다 돼지 사육 마릿수가 훨씬 많은 데다 백신 균주를 하나 추가할 때마다 비싸지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8차례 구제역이 발생한 우리나라에서는 A형 구제역이 검출된 것은 2010년 1월 포천·연천 소농가에서 6건이 발생한 것이 유일했다.

나머지 7차례는 전부 0형이었다.

◇ 주변국 ‘A형’ 돼지 발병에도 대비 안해…발생하면 속수무책

이번에 경기 연천의 소 농가에서 7년만에 다시 A형이 발생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돼지 농가에서 A형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외국에서는 돼지의 A형 구제역 발병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지난 2010년 5월 17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 검역본부)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당시 포천에서 발생한 A형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년도인 2009년 동북아시아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A형과 97.64%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역원은 2009년 5월 21일 중국에서 돼지가 A형에 확진된 사례가 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국제수역사무국(OIE) 구제역 위원회 정례 회의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는 2013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인 2015년 5월까지 총 25건의 A형 구제역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3건은 돼지에서 발생했다.

검역당국도 A형 구제역이 국내 돼지 농가에서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며 부인하지 않고 있다.

돼지의 경우 구제역에 걸리면 공기 중으로 배출하는 바이러스양이 소보다 최대 1천 배가량 많아 삽시간에 퍼질 위험이 크다는 점도 불안을 가중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있는 A형 백신은 소 전용으로 수입되는 O+A형 백신뿐이다. 그마저도 현재 정부가 확보한 재고가 190만마리분에 불과해 소 일제접종(283만마리)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8일 영국 메리알사에 긴급 수입을 위해 재고 확인을 요청해놨지만, 11일 현재까지도 회사 측의 회신조차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돼지 사육 마릿수가 1천100만 마리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돼지에 접종할 A형 백신을 급하게 구해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돼지 농가들은 소독과 차단 외엔 별다른 묘수없이, A형 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기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셈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주변국에서 A형이 꾸준히 보고됐는데도 정부가 안일한 대응으로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돼지에서 A형 발생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과거에 보면 구제역 유형이 소면 소, 돼지면 돼지 등 한쪽에만 발생한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이미 A형이 확진된 소에 집중하고, 동시에 돼지 농가로 유입이 안되도록 방역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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