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애 울산과학고 교사

2월은 묵은 사랑이 벗겨지는 달이다. 정들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떠나고 새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 고질병처럼 매년 2월이면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한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복도를 걸어가는 나, 희미한 형체를 한 학생들과의 어색한 인사. 이 장면만 며칠 꿈속에서 반복된다. ‘그래 교실문을 열고 이렇게 해 봐야지. 아니야, 이렇게 해야 더 좋지 않을까? 목소리 톤은 이렇게 하고…. 이번에는 그렇게 한번 해 봐야겠다.’ 이 것이 몇 날 며칠 내 머리를 떠나지 않으니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한참 지쳐 있다 드디어 3월 그날이 된다. 우습게도 그 두려움은 교실문을 열자마자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

사실 2월마다 나를 괴롭혔던 병은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적인 상황이 사라지면 해결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우연은 버스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각자 원하는 특정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동일한 시간대에 그 버스를 탄 사람들의 만남은 너무나 우연적이다. 또한 명확한 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도달 즉시 깨어지는 만남이다. 그렇기에 서로 감정조차 나누지 않는다. 학교 역시 특정한 목적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왜 이 우연적인 만남이 이토록 두려운 것일까?

작년 4월쯤 우리 학교 체육관 벽면에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 한 구절이 걸려 있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 시가 내 머리를 때렸다. 고질병의 원인을 찾아낸 것이다. 학생들과의 우연적 만남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나와 학생과의 만남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이기에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자의 삶을 가로질러 과거와 현재, 미래 모든 것들과 묶는 만남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 어마어마한 일을 앞두고 있는 우연 앞에 환자처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원인을 찾았으니 처방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의 뒷부분을 읽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바로 이거다. 바람의 마음을 흉내내는 일. 그래서 작가는 ‘마음’이라는 글자 아래 고이 쉼표를 찍었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얼마 전 지난 일 년 동안 부서지기도 하고 부서지기 쉬웠던 내 마음에 학생들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를 남겨 주었다. 이것이 그 바람의 마음일 것이다. 3월이면 부러지기 쉽고 부러지기도 했을 각양각색의 삶을 살았던 학생들과의 우연적 만남이 시작된다. 그 어마어마한 아름다운 우연을 준비하며 2월을 보내야겠다.

김국애 울산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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