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치부장

흩날리는 눈이 녹아 비(雨)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水)이 되는 절기, 우수(雨水)가 모레다. 바야흐로 지표면의 식물들이 물을 당겨올리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농사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우수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지난 2009년 허진호 감독이 만든 ‘호우시절(好雨時節)’이다. 제목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가 적당할 것 같다. 영화에서는 사랑의 비가 적당한 시점에 내려 사랑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제목은 중국 성당(盛唐)시대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의 첫구절에서 따왔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봄이 되니 내리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이 시는 두보가 50세 쯤에 쓰촨성 청두에 두보초당(杜甫草堂)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일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할 때 지었다. 이 시를 지은 날은 우수(雨水) 전후였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한다.

 

초목이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하는 우수 즈음에 농촌에서는 가지치기를 한다. 물과 영양분을 필요 없는 가지에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또 울산 상북면의 배내골과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 일대에서는 고로쇠 물을 채취한다. 이맘 때 수피가 얇은 나무에다 청진기를 대면 물이 이동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세콰이아의 일종인 자이언트레드우드라는 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110m까지 자란다. 아파트로 치면 35층 정도다. 이 나무가 꼭대기까지 물을 빨아올리는데는 1100㎏이 넘는 펌프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수를 앞두고 필자의 집 앞 작괘천의 바위술잔에 겨우내 얼어있던 얼음도 점점 녹아가고 있다. 회색빛 영남알프스에도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이재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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