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우중화해 집권에만 열중
5년마다 되풀이되는 ‘쪽박정치’
정치 대개조를 통해 바로잡아야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국민에 의한 정치’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그 결과가 항상 ‘국민을 위한 정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즉 국민의 투표권 행사로 정치전문가를 뽑아 국정을 위임하는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대다수의 국민은 전문지식이 부족하거나 생업에 열중한 나머지 깊은 생각없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선의 정치인이나 국가정책을 선택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투표는 누가 옳고 그른가의 선택이 아니라 누가 다수 득표인가하는 결과만을 판단하기 때문에 정의와 득표수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인 플라톤도 직접 민주주의를 폭민정치 혹은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비판하며 현자에 의한 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테네의 몰락 원인을 대중적 인기에 집중하고,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현상,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개인이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현상, 전문성을 부정하고 인기 영합적 다중주의로 흘러가는 중우정치 등을 지적하고 있다. 2500년 전 국가 몰락의 진단이 지금의 현실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하다.

현대 민주주의 하에서의 중우정치의 폐해는 독일 나치당의 등장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히틀러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지도자였고, 나치당의 정치행위는 모두 의회의 승인을 거친 것이다. 그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매체인 라디오를 통해 선동과 기만을 일삼았고, 이에 눈과 귀가 멀어 우중으로 전락한 독일 국민들은 600만 유대인 학살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선동당하거나 기만당한 우중(愚衆)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의 정치가 정의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가 된다.

영국의 브릿시트 결정, 미국의 트럼프 당선 등도 우중에 의한 투표 결과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좀 더 지켜 볼 일이다. 문민정부 출범이래로 국민투표로 뽑은 우리의 대통령들도 초기에는 모두 70% 이상의 지지로 출발했다가 임기 말에는 대부분 10%대의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고, 조마조마하던 박근혜 대통령도 결국 탄핵 이라는 최악을 상황을 맞았다.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모든 국정은 마비되고 국격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국민 정서로는 여·야 공히 공동 책임을 절감하고 물러나야 할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대선 후보로 나서고 있다. 지난 대선 때의 풍경에 비해 달라진 것은 없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방색 부추키기, 시장 바닥 돌아다니는 이미지 정치하기, 태극기 흔들며 진보·보수 편 가르기, 언론의 근거도 모호한 지지율 중계하기, 재탕·삼탕 포플리즘 공약 제시하기, 불리할 때만 안보 타령하기, 단일화 타령하기 등으로 국민을 우중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맛있는 빵을 굽기 위해 재료를 배합하고 반죽을 잘해 구워도 매번 덜 익거나 탄 빵만 나온다면 재료나 기술보다 빵 굽는 기계 고장으로 보아야 한다. 정치권은 구워지지도 않을 장밋빛 공약보다 정당구조, 권력구조, 정치환경, 언론환경을 개혁해서 실패하지 않을 리더를 선출하고, 국가정책의 영속성과 안전성을 확보한 다음 수많은 국가적 난제를 풀어 갈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즉 정치시스템에 대한 대개조가 가장 중한 일인 것이다. 기존의 질서와 기득권에 기대 기존의 방식으로 국민을 우중화(愚衆化)해 대통령이 된들 고장 난 오븐으로 맛있는 빵을 구울 수는 없다. 더 이상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실패를 거듭해서는 안된다. 국가가 더 거덜나기 전에 5년마다 엎어먹는 쪽박 정치는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한시적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정치대개조 플랜을 마련하고, 이를 개헌을 통한 신헌법에 담아 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 대다수 깨어 있는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국민투표제도가 정치인이나 언론이 국민을 우중화하는 결함이 있기는 하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다른 정치적 대안을 아직 인류는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민의 각성만이 민주공화국을 지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