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기자 정치부장

큰개불알꽃이 지천이다. 이른 봄날 양지바른 땅이 햇살을 가득 받아 밀어올리는 꽃, 봄 소식을 가장 먼저 가져다준다고 해서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린다. 나태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이 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이른 봄 큰개불알꽃(사진)과 함께 피는 것들로 쇠별꽃, 개쑥갓, 냉이, 광대나물 등 여럿이 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절대 보이지 않는 꽃들이다. 정겨운 꽃 이름들은 순박했던 나의 코흘리개 친구들 이름 같다. 그런데, ‘큰개불알꽃’ 말고 그냥 ‘개불알꽃’도 있다. 둘 다 ‘개불알’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만 모양도 다르고 소속도 전혀 다른 별개의 꽃이다. 큰개불알꽃은 꿀풀과에 속하는 것이지만 복주머니처럼 생긴 개불알꽃은 난(蘭)과에 속한다. 그래서 ‘복주머니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윤옥 시인이 지난 2015년 펴낸 <창씨개명된 우리풀꽃>에 따르면 큰개불알꽃은 일제강점기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 마키노 도미타로가 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처럼 생겼다 해서 ‘큰개불알(大犬の陰囊)’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개불알꽃(복주머니난)은 꽃 자체가 개불알을 닮았다. 1997년 최진실과 박신양이 주연한 영화 ‘편지’에서 임업연구소 연구원인 환유(박신양)가 정인(최진실)에게 몹시 쑥스러워하며 소개했던 꽃이 이 개불알꽃이다. 아래쪽으로 부풀어 늘어져 나온 꽃잎을 보면 꽃이름을 수긍하게 된다.

 

큰개불알꽃처럼 조선 들꽃들은 정겹다. 어느 시인은 우리의 들꽃 이름을 나열하다 어릴 적 코흘리개 친구들을 떠올렸다.

…으아리 진득찰 바위손 소리쟁이 매듭풀 절굿대 노랑하늘타리 딱지꽃 모시대 애기똥풀 개불알꽃 며느리배꼽 꿩의다리 노루오줌 도꼬마리 엉겅퀴 민들레 질경이 둥굴레 속새 잔대 고들빼기 꽃다지 바늘고사리 애기원추리 곰취 개미취…덕팔이 다남이 점순이 간난이 끝순이 귀돌이 쇠돌이 개똥이 쌍점이 복실이…권달웅詩 ‘들꽃이름’

이재명 기자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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