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를 대자
오래된 나무는
할머니 심장처럼 느렸다
빈 그네에 태워
나무는 떠난 소년을 밀고 있었다
꽃 피우면 힘들잖아
나이테 갈피로 녹음된 목소리가
더딘 호흡을 맴돌고 있었다
약한 허리 쪽으로 깍지벌레들이 습격했다

-중략-

나무는
새의 울음으로 울었다
노을 쪽을 잘라 나갔다

소년이 나무를 잃을 때까지
나무가 소년을 잊을 때까지

▲ 엄계옥 시인

제목이 백조의 노래다. 평생을 울지 않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골수에 박힌 단 한 문장을 빼내기 위해 심장을 토해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시인이니, 이와 무엇이 다를까. 이 시에서처럼 죽기직전까지 단 한 곡을 위해 오래된 나무는 혼신의 진액으로 새의 울음을 빚는다. 그러나 ‘소년이 나무를 잃을 때까지도 나무가 소년을 잊을 때까지’ 그 빛나는 단 한 문장, 한 곡조는 오지 않는다. 그것을 기다리느라 일생을 쓴다. 즐거운 비명인 동시에 때론 괴로움이기도 하다. 생사까지도 두려워 않는 게 시마(詩魔)라는 혼이다. 그 정신의 뼈대라면 단 한줄 단 한 문장을 얻기 위해 내장을 토하는 셈을 치르는 것도 달게 받을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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