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맞서 9년간 싸운
러빙부부의 실화 스크린에 옮겨

▲ ‘러빙 대 버지니아주’ 판결의 당사자 러빙 부부의 사연을 담은 영화 ‘러빙’의 한 장면.

1958년 6월2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백인 남성 리처드 러빙과 인디언 피가 섞인 흑인 여성 밀드레드 지터는 워싱턴 D.C.까지 가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버지니아주는 인종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부부는 한 달여 뒤 체포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25년간 버지니아에서 추방된다.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다.

“개인은 인종 차이를 떠나 자유롭게 혼인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또한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대법원은 1967년 6월12일 버지니아주의 인종간 결혼금지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한다.

‘러빙’은 미국 사법역사에 한 획을 그은 ‘러빙 대 버지니아주’ 판결의 당사자 러빙 부부의 사연을 담은 영화다. 그러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안정적 선택지를 모두 거부한다.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거나 최루성 신파를 투입하지 않고, 유능한 변호사가 법정에서 벌이는 짜릿한 반전도 없다. 영화는 부부가 9년간 겪은 고난을 담담하고 시선으로 따라간다.

버지니아 농촌마을에서 쫓겨난 부부는 워싱턴 D.C.로 이주해 세 자녀를 낳고 키운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에 일상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영화 후반부를 채우는 건 법정공방이 아니라 부부의 심리 묘사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도 요란한 극적 장치로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대신 다섯 명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리처드가 벽돌로 쌓아올리는 건물의 뼈대와 그의 표정에 시선을 자주 고정한다.

뻔하지만 안정적인 이야기 대신 러빙 부부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조엘 에저턴(리처드)과 루스 네이가(밀드레드)의 연기에 빚지고 있다. 두 배우는 과도한 감정 표출을 자제하면서도 수시로 변하는 불안과 희망의 혼합비율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3월1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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