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된 탄핵찬반론
흑백논리보다 국론분열 막을 해법 절실
탄핵심판 이후 후폭풍 잠재울 대안을

▲ 이재명 정치부장

“전쟁터에서는 적을 만나면 칼을 뽑겠지만 정치판에서 적을 만나거든 웃으세요.”

“정치하는 자에겐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네…하나는 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구.”

지난 2014년 전 국민을 TV 앞으로 모여들게 한 50부작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이 한 말들이다. 당시 이 어록들은 블로그와 SNS를 타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권모술수로 얼룩진 정치의 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의나 진실 보다는 거짓과 술수가 판치는 우리의 정치판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 정치판을 간접 경험한 국민들은 최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통해 정치판을 또 한 번 대리체험할 수 있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일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히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 정치가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며 ‘정치꾼’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을 느꼈다고 밝혔다. 당시 반 전 총장 측근인 이상일 전 의원은 “몇몇 유력하고 유명한 정치인의 말과 태도는 반 전 총장을 만났을 때와 밖에 나와 언론을 통해 얘기했을 때 판이했다”며 “그들은 자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반 전 총장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반 전 총장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서슴없이 뱉었다”고 밝혔다. 이인임이 500년 전에 했던 정치판 권모술수가 아직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치판에선 적이 아니면 도구’라는 말이 이 상황에 너무나 적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작금의 정치판은 헌법개정과 대통령 탄핵, 대통령 선거 등이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등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유례없이 복잡해지고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서 TV뉴스도 믿지 못하겠다면서 TV를 끄는 사람도 늘고 있다. 법원의 영장담당 판사는 정확하고 공정한 판정을 내리기 위해 아예 TV를 보지 않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소위 유력 대선 후보들은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부추기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오든 우리나라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는 그 동안 결사적인 자세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왔다. 따라서 탄핵심판의 결과는 더 큰 국론분열의 기폭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제는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국론분열을 막을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각 당이 탄핵심판 결과에 승복하기로 구두 합의를 했지만 합의는 합의일 뿐 갈라진 국민들의 분열은 봉합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인임 같은 정치인들이 득실대고 이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하야론이 여권을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도 검토를 한 것으로 들린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에 야권은 한국당이 성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략적 목적으로 하야를 악용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물론 모두가 흡족한 하야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동의와 여야간 타협이 이뤄져야 하며,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등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하야론에 눈길이 가는 것은 탄핵심판 이후 나타날 심각한 부작용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하야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다른 대안이라도 정치적으로 도출해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 정치는 누가 집권을 하든 간에 정면대결 양상이 이어지면서 탄핵과 방어가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사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재명 정치부장 jmlee@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