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태화강 십리대숲

▲ 사시사철 푸르른 태화강 십리대숲, 봄이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기운이 생동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자 시민들의 일상이 공존하는 대숲이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지 등 지역대표 관광명소로도 부각되고 있다.

1994년 주거지로 도시계획 변경
개발 열기에 사라질뻔한 태화들
대대적 대숲 보존운동으로 지켜
2010년 6월 개장 태화강대공원
삼호 ~ 용금소 4㎞ 울창한 대숲
전국 각지 관광객 발길 이어져

삶이 숨 쉬는 태화강 십리대숲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곳디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여난다
뎌러코 사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중

태화강을 따라 걸음걸음 심어져 숲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를 볼 수 있다. 2010년 6월에 개장한 태화강대공원에 오산을 중심으로 삼호에서 용금소(태화루)에 이르는 약 4㎞ 구간의 대나무 군락지를 십리대숲이라 한다. 대의 무리가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생적으로 자라난 것인지에 따라 밭이라 하기도 하고 숲이라 하기도 한다. 풀인지 나무인지 혹은 밭인지 숲인지의 사전적 의미는 접어두고 숲이라는 글자가 지닌 고요하고 청아한 울림에 끌려 조금은 비현실적인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보려한다.

한 해중 가장 짧아서일까 아쉬움이 베여있는 2월의 끝자락을 잡고 추위가 떼를 쓰고 있지만 옷깃을 여민 채 걸어 볼만하다. 먼저 전원아파트 앞에 주차하고 오산에 있는 만회정으로 가보았다. 오산은 자라의 형상을 닮아 오산이라 하며 만회정은 조선시대 부사였던 박취문 선생이 1600년대 말에 건립한 것으로 조선 말기에 소실됐다. 2011년12월에 울산시에 의해 복원된 정자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대나무가 천지에 도를 행할 군자가 본받을 품성을 모두 지녔다하여 좋아했다. 군자란 무릇 맑고 절개가 굳으며 마음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생께서도 이 곳에 정자를 세우셨을 것이다.

 

태화강 십리대숲의 근원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오산 만회정 주위에 대나무 숲이 있었다는 1749년 학성지의 기록이나 고려 중기 김 극기의 태화루 시 서문에 대나무가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태화강 십리대숲이 먼 옛날부터 자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자를 돌아 숲 사이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한결 아늑하게 느껴졌다. 더위를 막아주고 추위를 막아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참 속도 없구나 싶다. 인간들이 자연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하지만 태화강 십리대숲은 그래도 조금은 면이 서는 곳이기도 하다. 두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모습을 하기까지 울산시와 시민, 환경단체, 학계의 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태화강 하천 정비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대나무를 모두 제거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평소 수량에는 물을 막아주고 농사에 도움이 되는 대나무가 홍수시에는 강으로부터 넘쳐 흐른 물이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변쪽으로 20~30% 정도의 대나무는 제거되었다. 또 1994년 태화들이 자연녹지에서 주거지역으로 도시계획이 변경되면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수도 있었다. 이때 태화들과 십리대숲을 보전하기위해 ‘대숲보전서명운동’ ‘태화들 한 평 사기운동’등을 펼쳐 대숲을 지켜냈던 것이다.

 

한쪽 옆에 마련된 등나무 벤치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본래 갈등이란 칡 갈(葛)과 등나무 등(橙)을 조합한 것으로 칡은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고 등나무는 반대로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서 두 나무가 얽히면 아주 풀기 어렵다. 때문에 서로간의 의견충돌 및 마찰에 비유해 갈등이라 말한다. 서로 차이 나는 것을 인정하면 ‘공존’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숲의 기운을 쐬는 죽림욕장이 나왔다. 둥글게 자리잡은 벤치에 앉아 대나무 숲에서 나오는 음이온도 마시고 옛 추억도 떠올려 보았다. 처음으로 주어진 투어 일정이 바로 이 곳이었다. 장애인단체를 모시고 이 곳 죽림욕장에 이르렀을 때 시각장애인 한 분이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계셨다. 그 오카리나 소리는 대무의 긴 울림을 타고 숲을 메우고도 모자라 푸른 가을 하늘을 가득 채웠다. 마치 대나무 자체에서 소리를 뿜어내는 듯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특별함이 아닐 수 없었다. 오카리나 소리로 긴장된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하고 정돈된 나무들, 몸이 불편한 사람도 걷기에 안전한 산책길, 새들의 수면을 배려한 키 작은 가로등 “이 숲에는 너구리가 살고 있습니다” 등의 푯말등 곳곳에 세심한 손길이 깃들여 있었다. 함께 온 시각장애인들이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해설은 적절할까 신경쓰였는데 그분들은 누구보다도 즐거워했다. 나무도 만져 보고 향기도 맡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맡긴 채 대숲을 체험했다. 그분들의 미소를 보면서 비로소 그날의 해설사는 숲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장현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

추억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대나무는 봄에 싹이 나서 한 달 만에 다 자란 다음 단단해 질 뿐 더 이상은 자라지 않는다. 많이 자라는 대나무는 하루에 1m 이상 자라며 온대지방 대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22m에 밑둥치 직경이 17㎝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대나무가 이렇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다른 식물들은 성장을 담당하는 생장점이 줄기 끝에 하나밖에 없지만 대나무는 마디마디 생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시에 자라나기 때문에 다른 나무에 비해 몇 배나 성장이 빠른 것이다. 하지만 이 마디가 형성될 때는 성장을 멈추고 힘을 모으기 때문에 다른 시기보다 유난히 더디게 움직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긴 울퉁불퉁한 마디는 대나무가 휘지 않고 곧게 자라게 해 준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 절망 같은 힘든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힘에 겨워 멈춰 서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이 기다림이 우리 삶에 마디를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으면 한다. 이 마디를 통해서 삶이 더욱 견고해 지고 성숙될 것이라고 말이다.

대숲을 빠져나오자 여전히 바람은 차지만 시리게 눈부신 햇살이 봄이 왔음을 일러주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기분 탓일까?

장현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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