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와 진영논리가 판치는 정치
진실규명 본질보다 세력간 다툼 몰입
민생없는 정치놀음에 국민은 지쳐가

▲ 이태철 논설위원

피노키오가 말한다. “나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자라.” 코끼리가 화들짝 놀라며 “그럼 나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한거야.” 서글픈 표정의 돼지는 “내 코가 밑둥에서부터 싹둑 잘린 것도 거짓말 때문일까?” 장탄식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최순실, 멀쩡한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나는 정말 억울하다고요.” 박근혜 대통령도 한마디 거든다. “그것 봐요.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혼돈의 시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더욱 그렇다. ‘진실규명’이란 문제의 본질은 제쳐두고 곁가지에 매달려 세력간 치고 받는 형국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한의 부정게임에 빠진 탄핵찬반세력들. ‘기각되면 혁명’ ‘인용되면 내란’ 운운하며 서로를 향해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위험수위다. 탄핵심판 이후가 더 걱정이다.

정치권이 그 대립의 중심에 있다. 민생을 어루만져 줄 이성적 언어는 뒷전이다. 맹신에 찬 찬반논리만 내세워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다. 보수·진보도 모자라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편가르기를 강요하고 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대별되는 진영에 따라 “탄핵은 북한에서나 하는 정치탄압” “개는 짖어도 탄핵열차는 달린다”는 막말 공방을 신호삼아 상대를 향한 공격에만 여념이 없다. 수많은 대중도 긴가 민가 헷갈려 하면서 어느새 갈등과 반목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유언비어가 담긴 ‘가짜 뉴스’까지 만들어 낸다. 진실여부와는 상관없이 SNS를 통해 무차별 살포, 유불리에 따라 확대재생산되기도 한다. 입에 담기 민망한 얼토당토 않는 내용이지만 ‘진짜’와 ‘가짜’에 대한 고민은 없다. 굳이 따질 이유도 없다. 의도한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문제의 본질은 희석되고, 처음 제기됐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 죄와 벌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뒷전이 돼 버렸다. “정치의 내용이 빈약하고, 흑백논리와 진영논리가 판치는 정치 상황에서는 거친 발언을 쏟아낼수록 자기편 지지자들에게서 뜨거운 환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맹신의 함정’에 빠지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옳고 그름보다는 진영논리에 매몰된 혹세무민의 정치부재시대다. 교과서적인 의미로 따진다면 정치와 이성적 언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이성적 언어로서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 표현한다. 그것으로 대중은 정치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건 정치공동체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탐지하는 센서는 바로 정치인들의 이성적 언어다. 이성을 상실한 우리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언어가 우리 현실을 암담하게 한다. ‘사람들의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정치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진즉에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면서 이처럼 치열하게 경쟁했더라면 우리의 현실은 좀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최순실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27일 있었다. 선고를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결전답게 국회측과 박 대통령측의 뜨거운 공방이 펼쳐졌다. 인용이냐 기각이냐 최종 결정될 때까지 살얼음판 정국을 예고하면서 날을 세운 것이다.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운명의 2주동안에 또 무슨 일어날지…. 선고 이후는 어떨지 걱정이 꼬리를 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민생 없는 정치 놀음’에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결론이든 국민 없는, 정치를 위한 정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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