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상 성인 13% 우울증 경험
냉정하게 존재의 가치·이유 찾아
무력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 이병희 울산 동구보건소장

얼마전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에서 우연히 남자 주인공의 멋진 대사를 듣게 됐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대사에 녹아 들어 그 드라마를 첫회부터 다시 찾아 본 적이 있다. 마음속에 기다림과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우울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고단한 삶 속에서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아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질병관리본부의 ‘한국 성인의 우울증상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12.9%가 최근 1년 동안에 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여성이 16.5%로 남성 9.1%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연령별로는 70세 이상이 17.9%이었고, 60대 15.1%, 50대 15.0%, 40대 12.9% 순으로 나이가 들수록, 가구의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우울증에 더 쉽게 걸리는 경향을 보였다. 거주 지역별로는 도시(12.3%)보다 농촌(16.5%) 거주자에게서 우울증 빈도가 더 높았다. 반면 최근 1년 동안 정신건강 상담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고작 9.7%에 불과했다. 마음의 감기로 불리는 우울증은 극단적인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울증을 별거 아니라 생각해 방치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주위의 관심도 매우 중요하다.

성과와 성취 위주의 사회 속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은 무수히 많다. 다만 상처를 얼마나 현명하게 받아들이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다르니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신을 부정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살면서, 생각지 못한 상황들 앞에서 좌절하거나 삶의 변화를 꾀하며 불안을 느낀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빠지게되고 결국 우울증상으로 발전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이 지속되고 심각해지면 신경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안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현재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를 찾아내고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본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히지 않으며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과의 경쟁에서 한발짝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 이렇게 마음을 다스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소 명상이나 요가 등을 통해 화, 분노, 초조 등을 안정시키는 방법들도 체험해보고 고민이 있거나 힘들면 심리적인 지지를 해주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방법이다.

우울증과 관련해 생각을 정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원로학자의 책에 인용된 외국 동화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등산을 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길섶에 있는 버섯을 가리키며 “이게 독버섯이야. 먹으면 죽어”라고 말하며 지나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린 독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지며 말했다. “아, 내가 독버섯이구나, 난 누군가를 죽이는 존재구나…” 그러자 옆에 있던 버섯이 친구의 어깨를 받치며 말했다. “아냐, 저건 식탁 위의 이야기이고, 인간의 논리야. 넌 쟤네들이 먹으라고 태어난 게 아니고 나랑 친구하려고 태어난 거야. 넌 내 친구야.”

이처럼 삶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무한히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된다. 투철하고 냉정하게 자기 존재의 가치와 이유를 찾고, 삶의 힘을 가져야만 무력감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다.

행복경제학 창시자 헬리웰이 제시하는 행복의 기준은 △1인당 GDP △건강기대수명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 △관대성 △부패인식 △사회적 지원 등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여섯 가지 행복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년간의 조사로 ‘사회적 지원’을 꼽는다. ‘내가 어려울 때 과연 나를 도와주고 돌봐줄 벗이 있느냐?’는 문제가 인간 사회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곧 봄이다. 볕 바라기하기 좋은 계절에 이웃과 함께, 친구와 함께 오순도순 볕 나누기를 해보는 것은 어떤지.

이병희 울산 동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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