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주년 3·1절…울산 독립운동가 엄준 열사의 안타까운 사연

▲ 병영삼일운동 재현행사 중 일제의 총탄에 맞선 애국지사들의 모습. 경상일보 자료사진

병영만세운동 주도했다
일제의 총탄에 맞아 순국
공훈 인정돼 애국장 받아도
찾아갈 가족없어 국가보관
무덤 찾을 방법도 없어

제98주년 3·1절을 맞은 가운데 일제강점기, 울산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벌이다 사망한지 백년이 다 돼 가지만 엄준 애국지사의 건국훈장 애국장은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애국장 추서가 결정된지 2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신 전해줄 후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 지사의 유족에게 전해져야 할 애국장은 국가보훈처에 사장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엄 지사는 지금으로부터 98년 전인 1919년 4월4·5일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그리고 희생자도 많이 발생한 울산 ‘병영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의 총탄에 맞아 숨진 4인의 지사 중 한 명이다.

당시 서울에서 귀향한 동지들과 함께 고향인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 일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며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희사했다.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해 4월4일 오전 9시 병영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총칼에 부딪혀 일단 동지의 집으로 피신했다가 이튿날 다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일제 경찰주재소를 찾아 체포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때 전면에 나섰던 엄 지사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한 일제 군경에 의해 김응룡·문성초·주사문 지사와 함께 순국했다. 당시 35세였다.

정부는 엄 지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고, 엄 지사의 공훈은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와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등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26년이 지나도록 애국장의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엄 지사가 1885년 태어났다고 알려졌을 뿐 정확한 생년월일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본적만 ‘경남 울산 서 310’으로 확인된다.

사망 당시 가족이 없었던 엄 지사는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탄을 맞아 쓰러진 엄 지사는 오랫동안 거적에 덮여 차가운 땅바닥에 그냥 버려져 있었고, 다행히 뜻있는 청년들이 나타나 엄 지사의 시신을 황방산 기슭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춘걸 전 남구문화원 이사는 14년 전인 지난 2003년 4월7일자 본보 기고를 통해 “엄준 열사를 묻은 세 분 마저 타계하니 열사의 무덤 위에 잡초와 나무가 우거져 자취 하나 없이 황량함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며 “다른 순국자 주검은 국립묘지에 안장돼 국민의 경배를 받고 있어 엄준 열사에 대한 연민과 송구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이 전 이사는 정부 기관의 창고나 캐비닛 등에 사장돼 있을 엄 지사의 애국장을 병영 3·1 유족회에 전수해 삼일사당에서 보관하는 방안을 물었지만 민법상 호주 상속자에게만 전수할 수 있다는 상훈법상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 전 이사는 당시 “가족이 없는 자는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의로운 일을 해도 보람이나 명예에 규제를 받아야 한다니, 그런 법들이 옳은지 모를 일이다”며 “엄준 열사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줄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지,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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