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유 사용설 있지만 기록 없어…패망 후 어선 연료로 사용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 전역의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전쟁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제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송탄유가 얼마나 생산됐고, 어디에 쓰였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1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일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송탄유를 만들었다.

소나무에 ‘V’자로 상처를 내 나온 송진을 받아 끓여 기름을 만드는 방법과 송진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 또는 소나무 뿌리를 가마에서 열을 가해 얻는 방법이다.

국가통계 포털에서 광복 이전 통계를 살펴보면 송탄유는 1931년 경북에서 425원, 1937년 경북에서 12원, 1939년 전남에서 518원에 해당하는 양을 생산한 것으로 기록됐다.

1935년 당시 쌀 1석(144㎏)의 가치가 평균 13.27원인 것을 고려하면 1931년 쌀 32석(4.61t), 1937년 쌀 1석(144㎏), 1939년 쌀 39석(5.62t)의 가치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상 물가지수를 고려할 때 1931년 당시 1원은 현재 화폐가치 4천956원으로 환산될 수 있다.

그렇다면 1931년 경북에서만 425원, 현재 가치로는 210만원 어치의 송탄유를 채취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일제가 송탄유를 항공유로 사용하기 위해 제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실제 항공유로 썼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송탄유를 항공기용 연료로 만들기 위한 공정이 필요했으며, 송탄유를 섞은 항공유로 시험비행을 했을 때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기록은 일본 측 자료로 남아 있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패망한 뒤 남은 송탄유를 어선의 연료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경북 문경, 충북 제천, 충남 보령, 태안, 서산, 경남 함양, 전북 남원, 경남 합천, 인천 강화 석모도 등 8개 지역에서 모두 121그루의 송진 채취 피해목을 표본 조사했다.

조사 결과 송진 채취를 위한 ‘V’자 상흔이 최대 1.2m 높이까지 남아 있어 소나무와 주변 산림 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송진 채취 피해목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태안 안면도, 합천 해인사 홍유동 계곡, 제천 박달재 등이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해방 후에도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한 주민은 “안면도 소나무의 송진 채취는 1970년대 초에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며 “당시 일당을 받고 송진을 채취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림청과 함께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전국 분포도를 제작하고, 피해 소나무 서식지를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해 보호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송진 채취 피해를 본 소나무도 구체적인 피해 시기를 조사한 뒤 지도에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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