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존중하고 자존감 지키며
자신이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해
사회에 희망의 싹이 되길 기대

▲ 이근용 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는 새내기들이 들어온다. 대학 신입생들은 고3까지의 빽빽한 일정 속에서 하는 공부와는 다른 분위기를 맞아 모처럼의 여유와 자유를 맛보기도 한다. 대학이 대학답지 못하고 취업예비학교가 됐다는 비난을 들은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적어도 대학 첫 학기에는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해보려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기대감 속에 보낸다.

대학 새내기들이 해 보려는 것 중에 ‘놀기’라는 것도 물론 들어간다. 요즘은 논다고 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을 연상하기 쉬우나 놀이의 대상은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노동이나 학습 이외의 활동을 모두 놀이라고 할 수 있으니 누구나 원하는 대로 자신만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막상 하고 싶은 대로 놀려고 하면 장애가 있다. 놀고 싶어도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니 어렵고, 할 줄을 몰라서 놀기가 어렵다.

사실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는 잘 노는 인자가 들어 있다. 고대의 영고, 무천 같은 제천행사나 신라 화랑의 ‘상열이가악’하는 심신수련에 관한 기록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춤과 노래를 즐겼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판소리나 전래 민요에서는 ‘놀아 보세’라는 추임새로 흥을 돋운다. 현대 생활에서 동창 모임이나 회식 자리를 노래방에서 마무리하는 문화도 그 연장 상에 있음을 안다. 아이돌 가수들의 한류 열풍의 근원을 여기서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이징하가 <호모 루덴스>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서양의 놀이 역사를 천착했으니, 놀이를 즐기는 것은 인간 공통의 속성이라 할 만하다. 누구나 일단 ‘논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 놀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먼저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누가 강제로 놀이를 하라고 해서 하는 순간 놀이는 노동이 된다.

그리고 놀이는 집단적으로 한다. 어릴 때 하던 소꿉놀이, 횃불놀이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 늘 상대방이 있었다. 놀이에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선의의 경쟁을 하는 상대가 있고, 항상 일정한 규칙이 있다. 놀이를 한다는 것은 이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놀이에서는 명예를 중시하고, 서로 존중하는 정신이 깔려 있다. 고대의 전쟁, 중세 기사들의 결투에서 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동양에서도 병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우두머리 장수들의 결투로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예도 흔히 있었다.

또 하나 놀이에서 중요한 점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는 놀이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순간 놀이는 도박이고 거래가 된다. 놀이는 놀이를 하는 그 순간에 모든 힘과 혼을 다 바쳐서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놀고 나서 ‘잘 놀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놀이의 본래 모습은 이처럼 명예를 귀중히 여기고, 규칙과 질서를 준수하고, 경쟁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 호이징하는 이런 놀이 정신이 인간의 문화를 일궈 온 원천이라고 본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현대와 같은 문명을 이룩한데에 놀이 정신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화폐가치나 교환가치로 평가되니 이런 놀이정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컴퓨터 게임, 스포츠, 바둑, 가수 오디션같은 것들이 그 자체로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얻는 과정으로 기능하니 본래의 놀이와는 거리가 있다. 진정한 놀이는 놀고 나서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결과에 승복하고 만족하면서 정신적인 깨달음이나 승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올해의 대학 새내기들이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때는 소프트웨어, 지능, 정신같은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4차 산업시대가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처음에 놀이로 시작했듯이, 앞으로도 크게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크게 변화시킨다.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의 이름과 자존감을 지키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정성을 다하며, 놀 줄 아는 대학 새내기가 우리 사회에 희망의 싹이 되길 바란다.

이근용 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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