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부추

 

포도당·과당 성분 풍부해 피로회복에 으뜸
비타민A 함유량도 시금치 보다 1.5배 많아
예부터 인삼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 있어

흙은 초겨울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어진다. 봄이 다가오면 땅 속은 전쟁이 난다. 새벽녘이면 수천만 자루의 뾰족뾰족한 얼음 칼(서리)이 하늘을 향해 있다. 옅은 햇살이 비춰지면 모두 대지의 양분으로 되돌아간다. 푸석해진 땅은 마침내 빗장을 연다. 봄은 고난을 겪으면서 만물을 소생 시키는 생동감과 시작의 설렘이 있다. 농부에게는 파종기로, 아이들은 입학과 신학기로 분주하다.

필자가 어렸을 때 봄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긴 겨울동안 식량이 거의 바닥이 나서, 지난 가을에 심어서 6월에 수확하는 보리를 기다리며 굶는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지금의 농산물시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텃밭이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각종 채소와 과일들을 재배하고, 겨울에는 땅을 파서 저장했다.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방언)였다. 산이나 들에 가지 않고 가까이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산의 자생 부추를 캐서 심었던, 부지런하고 지혜로웠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부추는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으로, 다른 채소와 달리 한번 씨를 뿌리면 다음해부터는 뿌리에서 싹이 돋아나 계속 자란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으나 서양에서는 재배하지 않는다.

부추의 효능과 관련하여 수많은 이름과 속담이 전해 오고 있다. 지역마다 다른 것은 차치 하고, 기양초, 월담초, 파옥초, 부추를 먹고 소변을 보면 벽이 허물어진다 하여 파벽초 등 참 다양하다.

속담으로는 ‘봄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 ‘봄 부추 한 단은 피 한 방울보다 낫다’ ‘삼월삼짇날 첫 부추는 사위도 안준다’고 해 부추의 효능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도 한다.

요즘은 하우스 재배로 연중 만날 수 있다. 울산부추와 포항부추가 유명하다.

특히 울산산전 부추는 서울 가락시장의 겨울부추 출하량의 30%를 차지한다. 특징은 잎이 넓고 광택이 나며 향이 진하다.

대표적 영양적 가치로는, 피를 맑게 하고, 해독 작용이 탁월하여 간(肝)의 채소라고 불린다. 독특한 냄새의 황 화합물인 ‘알리신’은 비타민 B1의 흡수를 크게 도와준다.

또한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에너지 대사를 높이고,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암을 예방하며, 몸에 열을 올려 준다. 다른 채소류에 비하여 단백질이 풍부하고, 당질의 성분이 포도당과 과당으로 구성되어 피로 회복에도 매우 좋다.

비타민A는 100g당 3610(I.U)로 시금치 보다 1.5배 가량 많아, 면역력을 높이는데 탁월하다. 비타민C는 시설 재배 보다 노지가 2배가량 많으며, 칼슘과 마그네슘은 노지 보다 시설 재배가 월등히 높았다.

▲ 정은숙 남목초등학교 영양교사

부추는 다양한 요리에 쓰이고 있다. 김장 김치의 맛이 떨어지는 요즘, 멸치액젓양념을 넣고 버무린 부추김치는 입맛을 돋우고 나른함을 없애준다.

또한, 다른 김치에 비하여 잘 시어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부추 겉절이는 돼지국밥에 제격이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양쯔강에서 비롯된 저기압에 비가 되어 녹아 내리는 날. 고월(古月) 이장희(李章熙)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라고 했다.

그 옛날 고사리 손으로 부추를 한 아름 베어 오면, 거친 밀가루에 버무려져 나온 체크무늬 혹은 몬드리안의 그림 같은 정구지떡을 부쳤다.

인공이 전혀 섞이지 않는 자연의 선물. 봄철 허기를 채워주고, 베면 또 나는 요술 같은 풀. 긴 동면을 깨고 자기 무게의 몇 십 배 되는 흙을 이기고, 세상에 나온 어머니 향기 같은 부추. 그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어디에 비 할 수 있으랴?

정은숙 남목초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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