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 뜨는 동해 바다-김창한作 : 자연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슴뭉클한 삶의 희망과 기쁨을 담고 있다. 수평선 위를 바쁘게 오가는 어선들과 공단을 향해 질주하는 대형 선박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간절곶의 새벽, 그렇게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바다를 마주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둥글넓적한 가자미를 보면
유년기 뛰놀던 공터가 떠오르고
바다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않는
어부 배씨의 투박한 情이 생각나
마음의 모래톱에 쓸쓸함이 앉는다

어떤 사물을 보면 장소를 연상시킨다. 특히 가자미가 그렇다. 그것의 쭉 째진 눈은 우측 끝에 함몰되다가 만 듯 간신히 두 개 붙여져 있지만 거의 얼굴이 없다. 안면을 모두 지운 대신 몸 전체가 둥글넓적하고 밋밋한 경사로 이어진 넓은 공터 같기도 하고 야트막하게 이어진 마을 전체 같기도 하다. 이에 반해 현대적 공간은 집약적인 높이로 치솟고 그 높이에 분할된 기하학적 면적 속에 거주한다. 이런 공간은 동질성과 규격화된 전망이 가능하지만 유년의 저 편에서 가물가물 뛰놀던 가역적 넓이와 은유적 자세가 없다. 마당의 꽃과 나무처럼 장소의 빈틈으로 스며들 여지가 없다.

가자미는 가자미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통틀어 말한다. 광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넙치와는 비슷하되 한 장소가 아니다. 가자미는 얕은 산등성이 하나 넘으면 어둑어둑하고 조용히 내려앉은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 옆으로 흐를 듯 말 듯한 실개천이라도 한두 개 있어야 될 것 같은 반면에 광어는 듬성듬성 사막이 보이고 가자미 보다 산세가 더 험난해 말이라도 타고 가야 도달할 것 같은 넓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어떤 장소를 자세히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장소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정자 포구에는 유달리 가자미들이 많이 잡히는데, 다른 해역에 비해 비교적 수심이 평탄하여 바닥에 납작 달라붙는 가자미의 특성에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정박 중인 60척 가까운 배 대부분이 가자미 잡이 자망어선이다. 전국에서 잡히는 가자미의 70%가 이곳에서 잡히고 있는 셈이다.

가자미 배들의 들락거림이 빤히 내다뵈는 바닷가에 짐을 푼 지 벌써 스무 해 가까이 된다. 이곳에서 조그만 가게를 얻어 약을 팔고 있다. 세월이 흘러 한 두 사람씩 어부들과 친하다보니 어느새 가자미와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가자미의 쫄깃한 회 맛이나 정자의 자연산 미역과 어우러진 가자미 미역국도 일품이지만 사실 가자미구이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것의 담백한 맛과 바삭한 식감은 마르셀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어떤 특정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그 장소에 어부 배씨가 있다. 십년도 넘은 것 같다. 배씨는 언제부턴가 우리 약국 단골이 되었다. 그 당시 벌써 오십이 조금 넘은 나이였지만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수레해보였다. 웃을 때 마다 무른 눈이 순해빠졌다. 가끔 시커먼 비닐 속에 비린내 물씬 풍기는 가자미 몇 마리를 넣어 건네주기도 했다. 고마워서 음료수라도 하나 챙겨줄라치면 “아따, 정으로 주는 건데 그냥 받으소.”라며 손사래 치고는 바삐 내뺐다. 우리는 그 가자미를 꾸들꾸들 말려 자주 구워먹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냄새가 입 속 뿐 아니라 손과 옷에도 여지없이 묻어나곤 했다. 어느 날인가. 그가 배를 타고 나간 갑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심장마비라고 했다. 갑자기 한 장소가 쑥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가자미 배는 캄캄한 새벽부터 출항을 서두른다. 오후 서너 시 쯤 되면 멀리서 배들이 드문드문 들어오는 게 보인다. 하지만 바다의 일은 강풍이나 풍랑 등 기상에 좌우되기 때문에 날마다 조업에 나설 수는 없다. 이뿐이랴, 바다에는 물때라는 게 있다. 약국 한 쪽 벽면에 수협 달력이 걸려 있고 거기에 큼직하게 쓰인 날짜 아래 그날의 물때가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물때란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가령 한 물 두 물이라는 표현으로 열세 물까지 올라가는데, 일 곱 물에서 아홉 물 사이는 유속이 매우 빠른가 하면 무시와 조금 때는 물의 흐름이 거의 없는, 다시 말해 바다는 사는 물과 죽는 물로 나눠진다.

그렇기에 바다 또한 삶과 죽음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특정한 장소다. 어업도 바다의 농사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농부도 씨를 뿌리려고 수평선을 넘지 않는다. 어느 하루도 아침에 나간 배가 반드시 저녁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끝없이 출렁이는 공간의 두려움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실존의 둘레를 가로질러 돛을 올리는 게 출항이다. 출항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곳에 조용히 숨죽여 엎드린 장소가 있다.

장소는 단지 보이지 않는 공간을 시각화한 면적만이 아니다. 시각의 형식은 언제나 인식이 죽어있는 구간일 뿐이다. 우리가 움직이고 먹고 살아가는 가운데 안과 밖으로 맺어지는 실재성의 총합이 장소다. 그곳은 응당 주소가 없다. 그렇기에 언제나 장소는 장소로 아득히 밀려온다. 가자미 또한 마음의 모래톱에 장소가 켜켜이 내려앉은 쓸쓸한 기억이다.

▲ 권주열 시인

■ 권주열씨는
·시인
·2004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시집<바다를 팝니다><바다를 잠그다><붉은 열매의 너무 쪽>·수요시포럼 동인

 

 

 

▲ 김창한씨

■ 김창한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 졸업
·개인작품집 발간(도서출판BMK-영문/한글, 2010년)
·1991~2016 개인전 34회(국내외-미국, 호주, 일본)
·2005~2016 아트페어/비엔날레/부스전 10회(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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