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선고후 혼란 불가피
승복과 관용의 시민정신만이
민주주의 철학 지킬 유일한 길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탄핵의 역사는 길다. 고려시대 무신 윤관에 대한 탄핵 기록이 있고, 조선실록에는 5000여회의 탄핵이 언급돼 있다. 조선의 탄핵제도는 사헌부·사간원 소속의 언관들이 대신들의 비리나 부도덕성을 임금에게 간해 그 처단을 기다리는 제도였다. 임금에 대한 탄핵은 바로 역모로 취급됐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간들에 의한 간쟁은 수시로 이뤄졌고, 때로는 왕을 몰아내는 반정이 도모되기도 하였다. 민주주의 헌법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파면을 위한 탄핵제도가 도입됐다. 통상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에서 탄핵을 의결하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에서 법적인 당부를 심판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다만 미국 헌법은 하원에서 탄핵을 의결하고 상원에서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초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3·1운동 이후 결성된 상해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됐으나 미국에서만 활동하면서 전횡을 일삼다 결국 임시의정원에 의해 탄핵을 당하고 만다. 이어 임시정부 수반이 된 박은식은 대통령이 막대한 권리만을 갖는 직책이 아니라 국가의 최종 책임자임을 명시하기 위해 대통령을 국무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국무령은 대통령을 대신해서 부를 수 있는 국가수반의 명칭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후일 이승만은 독재자로 물러남에 따라 탄핵과 하야라는 2관왕의 불명예를 안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언론에서 먼저 비위를 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언관에 의한 탄핵과 유사하다. 탄핵은 외형상으로는 권력자 개인에 대한 비리를 문책하는 것 같지만 배후에는 정치세력간의 사활을 건 정파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그 정치적 후폭풍은 국정을 왜곡,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가장 비극적인 탄핵의 결말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당시 노론 세력에 의해 탄핵을 당한 사도세자는 친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정조는 취임하자마자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선언하며 관련자들을 모두 처형하는 등 사도세자의 죽음은 장기간 국정혼란의 단초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사도세자를 추존하는 무속신앙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탄핵의 영향이 역사의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파와 김구중심의 상해파가 완전히 갈라지는 바람에 독립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해방 이후도 두 세력 간의 불화로 건국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겪었으며 결국 이승만 측에 의한 김구의 암살로 이어지고 만다. 기각되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의로 국정이 혼란과 왜곡을 거듭하였고, 아직도 정치권이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상황 앞에 착잡한 심정으로 서 있다. 연일 광장에서는 촛불과 태극기가 난무하고 서로 거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탄핵심판 결정의 후폭풍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이 정치전문가를 고용해 권한을 부여한 것은 사회적 갈등을 정치권에서 대화와 타협, 소통을 통해 해결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소통에 허약한 정치권은 매번 어려운 정치적 문제를 법의 영역에 방기,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수차례 탄핵 시도가 있었지만 한번도 탄핵 결정까지 간 경우는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류 된 닉슨도 하원에서 탄핵이 의결되자 즉각 사임, 탄핵이 가져올 국론 분열의 후폭풍을 피해나갔다.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가 채 며칠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 극적인 정치적 해법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선고 이후의 혼란상을 피하기 위한 박대통령의 마지막 애국심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글쎄다. 정치적 문제의 법에 의한 재단은 패자의 승복과 승자의 관용이 전제되지 않는 한 사회적 혼란을 더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결국 승복과 관용의 시민정신만이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 철학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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