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과 수필로 긴 투병 이겨낸 강인석·박동조씨 부부

▲ 조각가 강인석씨와 수필가 박동조씨 부부가 곤충을 재현한 조각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무해한 즐길거리 ‘나무 조각’
환갑 즈음에 백혈병 확진 받아
면역력 제로 상태서 찾은 취미
지난해 개인전으로 세상 빛 봐

모든것을 삶는 삶 살았던 아내
먹는것부터 옷까지 모두 소독
병원 입원때에도 병원식 대신
고단백·고지방 식단으로 완치

병간호 틈틈이 쓴 글 결실
무균실 생활 7개월간 쓴 수필
2013 천강문학상 대상 안겨줘
작품 모은 문화공간 만들고파

‘새로운 나무가 우리 집에 온 날은 남편이 입을 다무는 날이었다. 나무와 얘기를 하느라 침묵할 때가 많았다.(중략) 조각도를 쥔 남편의 모습은 신이 들린 사람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욕망을 후벼내듯 나무를 쪼았다…’ (수필 ‘각(刻)’ 중에서)

남편은 나무를 조각한다.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한때는 경찰이었고, 사업가였던 남편은 백혈병으로 5년여간의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다. 남편은 힘든 투병생활 중에도 나무를 조각할 때면 어떠한 걱정도 고통도 없어졌다고 한다. 남편의 옆에서 묵묵히 병수발을 들었던 아내는 그 순간순간을 수필로 남겼다. 이들 부부가 기나긴 투병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조각과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각가 강인석(68)·수필가 박동조(69)씨 부부는 드라마와 같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울산 남구 옥동 자택에서 강인석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까지 투병생활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건강한 혈색을 띠고 있었다. 간혹 ‘그렁그렁’하는 거친 숨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제외하곤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1970년대에 경찰로 임관한 그는 1980년대에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골재 채취, 중장비, 건설장비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 부침도 있었지만 왕성하게 활동했다. 본래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강씨는 채취장에서 자갈과 모래 등을 골라주는 선별기를 도면 하나 없이 뚝딱 만들 정도였다.

평생을 일만하며 살아온 그가 어느덧 환갑에 들어설 즈음, 백혈병 확진을 받게됐다. 강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이제 애들이 다 커서 출가하고 부부가 함께 즐길 시기인데 너무 억울했다”며 “특히 면역체계가 없어 주변 환경에 민감해 늘 집에만 있어야 하니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평소에 취미삼아 하던 나무조각에 빠져들게 됐다. 주변 세균에 쉽게 노출되는 그에게 나무조각 만큼은 인체에 무해한 즐길거리였다. 타고난 손재주에 자신만의 기법으로 조각에 매진했다. 나무조각은 그의 손을 거쳐 불상부터 사슴벌레, 나비, 풍뎅이 등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단순히 취미삼아 깎은 강씨의 조각품은 지인의 권유로 지난해 개인전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게됐다.

‘거미는 지쳤다는 듯 꼼짝하지 않는다. 몰아치는 바람에 거미줄이 끊어질 듯 낭창거려도 여전히 미동이 없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도 기척이 없다. 순간 내 심장이 멎는 듯하다…’ (수필 ‘거미’ 중에서)

수필가인 박동조씨는 남편 강씨의 병간호를 하는 동안 틈틈이 글을 썼다. 그의 작품 ‘거미’는 2013년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남편이 병원 무균실에서 7개월간 지내는 동안 그의 곁을 지킨 박씨의 감정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남편의 백혈병 확진은 지난 2010년 박씨가 농협전국주부글짓기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려던 즈음 알게됐다. 그의 글쓰기는 남편의 기나긴 투병생활과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투병기간 동안 공기를 삶아 먹을 정도로 모든 걸 소독해야 했다. 남편의 면역력이 제로니까 먹는 것부터 옷과 신발까지 무조건 삶는 것이 내 ‘삶’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남편을 쉽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남편에게 ‘지금 당신이 죽으면 오히려 복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썩 사회에 공헌을 한 것도 없는 당신을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백혈병에 고단백, 고지방 음식이 좋다고 해서 매일같이 돼지고기며 문어며 삶아다 먹였다. 병원을 퇴원할 때까지 병원식을 단 한번도 먹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박씨의 내조 덕에 남편은 지난해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들 부부가 함께있는 순간이면 병실도 집도 작품을 위한 작업실이 된다. 또한 서로가 조각을 하고 글을 쓰는 동안 배려하고, 작품을 위한 조언까지 해주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그리고 부부는 이제 자신들의 작품을 한데모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강씨는 “한쪽에는 내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한쪽에는 아내의 책을 포함해 독서를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어린 아이들이 찾아오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할 것 같다. 살아있는 동안 다른 이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전했다.

이우사기자 woos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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