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마을에 밥무덤이 있다

손바닥만한 논뙈기, 식구들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해마다
밥무덤에 하얀 쌀밥을 묻는다
넙죽 밥을 받아 먹는다

나도 나에게 매일 밥을 올린다
솥무덤에서 지은 밥
숟가락무덤으로 퍼서
나에게 먹인다
내가 무덤이다
무덤이 밥을 먹고 자란다

-중략-

오늘도 집무덤으로 퇴근한다

 

▲ 엄계옥 시인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에 가면 100여개의 계단식 논과 밥무덤이 있다. 경사면에 자리한 논은 적게는 3평에서 많게는 30평까지 층층이 책처럼 쌓여 있다. 논책을 읽으며 밥을 얻기 위한 인간의 투쟁을 생각한다. 비탈 논은 수탈의 역사 단면이기도 하지만 먹는 일(생존)에 관여한다. 밥무덤을 보며 시인은 밥과 몸의 관계를 설정한다. 그 순간 논도 밥숱가락도 집도 무덤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것은 허기를 채우는 도구들이기도 하다. 몸이 곧 밥 무덤이라고 생각 할 때가 많다. 세끼 밥으로 몸을 채우니, 밥벌이를 나갔다가 다시 밥무덤(집)으로 간 시인은 식구(食口) 속에서 평화로웠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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