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경주 교동 최부잣집

▲ 경주 최부자 마을은 교동한옥마을로 지정되어 세계적 관광명소로 되었다.

교동리는 소가 엎드리고있는 와우형
최부잣집·경주법주 고택은 소쿠리터
경주 남산이 안산으로 ‘소먹이’ 역할
관용·긍정·초연의 뜻 담은 가훈 유명
명당과 함께 훌륭한 정신적 유산 갖춰
영원히 존경받는 가문으로 정착 가능

현존하는 한국의 전통마을 중에 권세를 누리며 부자로 살았던 조선시대 양반층 종가 가옥들은 경상도 지방에서 보물이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교동리 마을은 경주최씨의 집성촌으로 경주향교와 최부잣집 그리고 경주법주 고택을 중심으로 많은 기와집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고, 작금에도 한옥마을로 지정되어 잘 보존·관리돼 발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대부 양반 가옥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마을들은 풍수지리 이론에 근거한 명당의 조건에 충족되어 있음을 풍수 전문가들은 논문이나 사료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이들 마을의 중심 혈 자리 부근에는 그들만의 문화중심 공간으로 종가(宗家)가 위치하고 있음이 현실적으로 조사되고 있다.

경주분지형 지세의 남서향에 있는 교동리는 남향으로 조선시대 양반집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 사료 가치가 크다. 이 마을의 중심 혈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최부잣집과 경주법주 고택은 와혈(窩穴)인 소쿠리터로 알려져 있는데, 소쿠리를 닮은 움집 터 와혈은 물건이나 그 무엇을 끌어 담는 기능으로 부귀손(富貴孫) 번창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중에 부자로 더 크게 발복되는 풍수기능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다. 경주법주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최경에 의하면 ‘교동리는 소가 엎드리고 있는 와우형(臥牛形)이라고 전해온다’ 하며 ‘소를 일으키기 위해 소머리 부분에 워낭을 상징하는 놋 전이 세 군데나 있었다’ 한다. 최부잣집 안채 마루에서 보이는 경주 남산의 모습은 안산(案山)으로 소가 먹을 먹이로 존재하며 많은 생기(生氣) 기운을 보내는 듯 마을을 향해 있다. 이는 마을을 향해 엎드려 슬금슬금 기어들어오는 지세로 마치 소쿠리로 지속적인 기운을 담아주는 인상을 주게 한다.

▲ 교동법주 사랑채 모습으로 최부자집 보다 지면이 높다.

최부잣집은 골반기능의 형산강구조곡에 연결되어 있는 주된 산 토함산(745m)을 할아버지 산으로 하여 부모산으로 보이는 넓고 광대한 평지지맥을 통해 지구의 동쪽 생기를 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집 앞으로 흐르는 남천은 형산강의 지류로 남출북류(南出北流)하며 마을을 환포하고 있다. 풍수지리학의 대가 건축학박사 박시익에 의하면 이러한 주변지형의 환경조건은 배산임수 지세의 득수형의 명당조건에 해당되어 교동리에 좋은 기운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주택공간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고방으로 구성되었고, 안채는 ‘ㅁ’ 자 모양이고 대문채는 ‘ㅡ’ 자 모양이다. 최부잣집은 약 400년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하였다. 안채로 들어가는 내문(內門)은 대문채와 어울리게 온기(溫氣)와 냉기(冷氣)의 흐름을 고려하여 안채의 온기를 유지시키는 기능으로 설계하였음을 보이고 있다.

하늘의 편평함을 연상할 수 있는 황룡사지 및 첨성대를 포함한 경주계림과 인왕동 고분군의 넓은 평지지맥에 연결된 최부잣집 집터 입지는 반월성의 반월(半月)로 표현되는 반달 옆에 자리한 밤하늘의 밝은 샛별의 위치에 있음을 연관시킬 수 있어 금성낙지혈(金星落地穴)로 볼 수 있다. 반월성과 최부잣집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랑의 물 흐름은 달의 기운과 별의 기운을 음기(陰氣)와 양기(陽氣) 기운으로 분리시켜 음양의 조화로운 생기(生氣)를 더욱 증폭시키기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최부잣집 안채전경으로 온화한 정기가 담겨져 있다.

샛별의 빛은 어두운 밤에 세상을 밝히는 선지자의 역할로 타인의 귀감이 되어 만인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최부잣집 별자리 기운은 가훈 및 유훈으로 연결되어 때로는 구국의 일념으로, 때로는 활인(活人)의 실천으로, 때로는 솔선수범의 표현으로 나타나 지구촌에서 영원히 존경받는 가문으로 정착되어 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진다.

최부잣집에서 전해오는 가훈으로 육연과 육훈이 있다. 육훈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고 했다. 또한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며느리가 시집을 오게 되면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위한 학습으로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했으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했다. 최부잣집의 1년 쌀 생산량은 약 3000석이었는데 1000석은 사용하고, 1000석은 과객에게 베풀고 나머지 1000석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수신가훈으로 육연(六然)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라는 자처초연(自處超然)·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라는 대인애연(對人靄然)·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라는 무사징연(無事澄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라는 유사감연(有事敢然)·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라는 득의담연(得意淡然)·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는 실의태연(失意泰然)으로 여기서 ‘연’의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 ‘그렇다고 여기다’ 인만큼 전체적으로 관용, 긍정, 초연의 뜻이 담겨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회적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noblesse) 오블리주(oblige) 실천으로 최부잣집은 세간의 화제가 되어, 그 정신은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듯하다. 이 집이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마지막 최부자로 알려진 문파 최준 선생이 있다. 최준(1884~1970)은 교동리 이 곳에서 출생하였으며 영남의 대주주로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해방직후 선생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학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였다. 이는 오늘의 영남대학교 전신이 되었고 현재 최부잣집은 영남대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별자리 터는 문파 최준 선생을 통해서 어두운 곳을 빛으로 밝히는 제세구민(濟世救民) 하는 귀감이 되는 정신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장·풍수공학박사

맹자가 말하기를 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같지 않고, 땅의 이득은 사람들의 인화만 못하다는 뜻으로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흔히 완벽하게 이루어짐을 이야기 할 때 쓰이는 말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원칙은 있을 수도 있지도 않다. 만약 부자를 만드는 틀이 있어 그 틀 속에 넣어 찍으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훌륭한 인성이나 전통적 가르침에 대한 정신적 유산(遺産)이 근본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그 틀을 제대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운을 가진 땅을 가졌어도 토목이나 설계를 바탕으로 집을 지으면서 그 명당 기운을 흡수하지 못하는 공간배치가 되면 명당의 기운은 나쁜 기운으로 바뀌게 된다. 그 이유는 작은 하나하나의 변모되는 실체가 있고 없음에 따라 기운의 척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터도 인위적으로 설계 건축한 주거공간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기운을 내어 삶의 주변 환경으로 자리매김 한다. 그 영향은 때로는 성공된 인생으로 때로는 실패하는 삶으로 한 개인을 운명을 유도하는 비밀코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바탕이 있음으로 해서 미래의 성공 완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경주 최부자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교훈으로 남는다.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장·풍수공학박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