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관련 경제보복 본격화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 완화 등
접근방식 재정립 계기로 삼아야

▲ 신병곤 한국은행 울산본부장

서울 서북쪽에는 홍제천이 흐르고 있다. 북한산에서 발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강바닥에 모래가 많아 ‘모래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수량이 부족해서 바닥이 메마른 경우가 더 많지만 조선시대에는 북한산의 우거진 숲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모여 들면서 제법 큰 강을 이루었다. 오늘날 수많은 차와 사람들이 이 강을 넘나들고 있지만 여기에 조선 여인들의 눈물과 한숨이 어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조선 사람은 60만명으로 그 중에 여인만 20만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 여인들은 돈 많은 사람의 첩이나 종으로 팔려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잃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인질들 일부는 조선과 청나라 간 협상이 진행돼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렇지만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 앞에는 따뜻한 환대보다 멸시와 조롱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청나라에서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는데 이들을 ‘청나라에서 몸을 버린 여인’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인’으로 치부해 냉대하였을 뿐 아니라 가족들도 집안의 수치로 생각해 구박과 학대를 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1만명 이상의 여인들이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환향녀들이 각 지역마다 지정된 강에서 몸을 깨끗이 씻으면 정절을 회복한 것으로 보고 백성들과 식구들이 이들을 따뜻이 맞이하도록 하는 교지를 내렸다. 한양에서는 청나라에서 도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홍제천을 정절 회복을 위한 목욕장소로 지정했다. 수많은 여인들이 다시 사회와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준 임금에게 감사하였다고 하나 그동안 겪은 수모를 생각하며 이들이 홍제천에 쏟았을 눈물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가히 짐작이 간다.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1244억달러이고 대중국 흑자규모는 374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내수도 직간접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도심 공사의 대부분이 호텔 등 숙박시설 건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이들 숙박업체의 주된 고객층이 중국인이다.

지금의 상황을 센가쿠 분쟁 당시의 일본에 대한 중국의 무역보복에 비교하곤 하는데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중 대중국 수출비중은 25% 내외로 센가쿠 분쟁 당시 일본의 대중국 수출비중 18% 내외에 비해 높은 반면 중국의 전체 수출 중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로 센가쿠 분쟁 당시 중국의 전체 수출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 7% 내외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나 무역분쟁이 격화될 경우 당시 일본에 비해 우리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뚜렷한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군사·외교적 경쟁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적 마찰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를 중국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저임금, 시장 접근 용이성, 성장 잠재력 등을 이유로 중국을 황금알을 낳는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이른바 ‘편중리스크’는 간과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체제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체제인 중국에 대해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센가쿠 분쟁 이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는 대신 동남아로 눈길을 돌린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380년 전의 조선과 달리 이제는 우리도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비록 국력이 중국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자호란 때와 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이로 인해 구성원 간 반목과 분열이 일어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각 경제주체들이 다소간의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의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시점이다.

신병곤 한국은행 울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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