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생존법 눈치
자기 이득을 위한 눈치·아부는
권위적인 사회로 만들어 부패 쉬워
법·원칙 벗어난 일에도 직언 못해
국정농단 사태도 그래서 벌어진듯

진학을 위해 전공분야 스펙 맞추랴
입시제도에 주눅든 우리 청소년들
사회 위선에 자신을 짜맞추지 말고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할 세상 왔으면
한국에서 눈치는 오래 전부터 생존의 문제였다.

▲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서 상점에 가면 어떤 물건을 사든지 값을 흥정해야 했다. 옷뿐 아니라 책값도 흥정을 했다. 난 주인이 얼마나 깎아줄지 눈치챌 수 없었고, 깎아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고 나면 손해 본 것 같아서 맘이 불편했다. 이런 세상을 살기란 참 피곤하다고 푸념했다. 내가 중학생이던 1977년에 처음으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어서 너무나도 반가웠다. 이젠 적어도 책은 맘 편하게 살 수 있으니.

당시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성공하려면 눈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의 부족한 눈치로도 알 수 있었다. 정경유착이 심하고 출세하려면 권력에 맞추고 줄서야 하던 시절이었다. 고교 때는 문과의 인기도 꽤 높았는데, 왠지 이과 계열은 살아가면서 눈치를 덜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진로도 이과로 정한 것 같다. 물론 모르고 한 선택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이 세상에 대인관계와 눈치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눈치 없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기 어렵다. 분위기를 깨기 일쑤고 모가 났다는 말을 듣기 쉽다. 조직사회에서 눈치 없이 나섰다가는 정을 맞게 되니, 자신의 생각은 감추고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습관이 생긴다. 한국 사람이 서양인을 만나면 이러한 문화 차이 때문에 오해가 생기곤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아도 명확히 거절하지 못하고, 질문을 알아듣지 못해도 되묻지 않고 알아들은 척 웃어넘기곤 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기보다는 매사에 상대의 기분과 분위기를 살피기 때문이다.

눈치 중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한 눈치와 상대를 배려하는 눈치가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눈치가 뛰어난 이가 많다. 상대의 얼굴 표정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뭘 원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챈다. 조직에서 필요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승진도 빠르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일이라면 눈치가 매우 빠르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눈치도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진료실에서도 이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직장과 사회에서는 성실하고, 친절하고, 솔선수범해서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지만 가정에서는 가족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 퇴직 후에 주위에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지고 가족들과도 거리감이 느껴지면 허탈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자기 이득을 위한 눈치와 아부가 만연한 사회는 권위적으로 변하고 부패하기 쉽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할 말을 못하고, 윗사람은 반론을 듣지 않으니 자만에 빠진다. 상사가 부정한 지시를 해도 상사의 의중만 파악하려 애쓸 뿐 원칙과 법에 어긋난 일이라고 직언하지 못한다. 최근에 수개월간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던 국정 농단 사태에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 그러니 청문회와 특검에서 아무리 따져보아도 명확한 사실 관계를 밝히기 어렵다. 많은 일들이 명시적인 지시보다는 눈치껏 알아서 챙기는 가운데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검과 재판은 일단락되었지만 눈치 보는 문화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문화에서 살아남고 선택된 눈치의 달인들이다. 이들은 복지와 성장의 구호, 은근한 비난과 모순된 변명, 결정적 순간의 한방 등 다양한 수단을 장기판의 말처럼 능숙하게 구사한다. 눈치를 보다가 대세를 따르고 법망을 피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등 곡예 운전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소신 있고 정직한 정치인이 마땅히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려우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앞으로도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서 눈치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친구와의 직접적 교류가 줄어들고, 공부만 하면 책임질 일이 없으므로 눈치를 익힐 기회가 별로 없다. 물론 앞으로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어서 눈치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불편과 불이익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지금의 입시제도는 학생들을 주눅 들고 눈치 보게 만든다. 많은 대학들이 전공분야 지원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자기소개서에 쓰도록 요구하고, 학생들은 학생부의 스펙을 전공분야와 연결해 스토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학창시절의 방황은 사치가 되었고, 자신을 돌아볼 경험도 부족한 학생들은 일찌감치 평가자의 눈치를 보면서 스펙을 준비하거나 억지로 짜맞추어 자소설(自小說)을 써야 한다. 미래의 꿈나무들이 사회의 위선에 맞추어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생각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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